참견 방지 매뉴얼
얼마 전에 결혼과 출산에 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아이를 낳게 되면 나쁜 습관들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습관을 고치겠다고 했다. 예시를 들어달라고 하자 그는 야식 습관을 꼽았다. 밤늦게 먹는 것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치킨을 뜯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맛있었던가. 나는 야식을 습관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행동 상당수가 습관일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술과 담배를 벗 삼았다. 술 없이는 잠들기 힘들다던 말씀이 옆에서 보기에 가슴 아프면서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건 결국 습관이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심리적 어려움 때문에 시작한 행동들이 이제는 끊을 수 없는 습관이 되어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아빠는 자녀들이 술과 담배를 하려 하면 꾸짖고 말리셨다. 건강에 해롭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누구나 술과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아빠의 태도는 "내로남불"처럼 보여서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저 참견으로만 여겨졌다.
어쩔 수 없는 습관 앞에서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녀들이 술과 담배를 시작하는 걸 보면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출산을 생각하면서 나쁜 습관을 끊으려는 친구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마치 자신의 탓인 것처럼 여기셨을 것이다. 아빠는 자주 "너희가 나중에 내 탓 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셨다. 자신의 습관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책임감을 느끼신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교육자,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 공동체 구성원 등 수많은 역할을 잘 해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낼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누구나 부족하고 서툴다. 아빠는 체력과 의지가 넘치던 시절,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때 모든 열정을 일에 쏟으셨다. 아버지의 역할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아빠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역할을 이제 나이 들어 시작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회하려는 그의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다. 여기엔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개입해서 변화시키려 들면 그저 잔소리와 참견이 될 뿐이다. 우리가 성인이기 때문이다. 성인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존재를 일컫는다. 법적으로는 만 19세를 기준으로 하지만, 이런 법적 기준이 우리의 내면과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자녀들은 스스로를 성인이라 여기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하는데, 부모가 그 책임을 대신 지려 할 때마다 자신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껴 반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무의미한 소통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다. 우리가 각자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 그렇게 만들어낸 삶의 무늬가 우리의 개성이라는 것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다. 이는 함께 망가지자는 말도, 서로를 완전히 방관하자는 뜻도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강요나 명령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선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니 아빠, 너무 책임감에 짓눌리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 나눠요.
사진 출처: Annie Spratt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