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독일계 외국계 회사다. 그래서 일반 한국계 기업에는 없는 좀 독특한 제도나 문화가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하고 싶은 것은 바로 ‘skip level meeting’이라는 것이다. 한국말로 하면 ‘직급에 상관없는 미팅’정도로 말 할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 어색하다. ‘skip level meeting’이란 무작위로 선출된 직원들 10여명이 분기에 한번씩 직접 독일 사장님과 점심식사를 하며 회사에 관한 경영층의 이야기를 듣거나 평소 사장님에 대해 궁금했던 점, 혹은 회사에 대한 건의사항 등 모든 주제를 쟈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미팅이다.
처음 이 미팅에 초대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설레였었다. 오며가며 뵈었던 사장님을 직접 만나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신입사원 이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고무되는 일이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등등 직급을 막론하고 10여명이 모여 사장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우선 사장님께서 현재 회사의 상황이라든지 독일 본사의 새로운 소식등을 전해 주셨다. 또는 요즘 회사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좀더 자세한 사항이나 내막을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여명이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사장님께 하는 질문이 거의 없음에 나는 다소 실망했다. 사장님의 질문에 마지못해 얼떨떨 대답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날카롭게, 혹은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 주는 듯한 시원한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질문에 아무 격 없이 시원스레 대답해 주시는 독일사장님의 모습은 나에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고 회사를 더욱 매력적이게 보이게 만들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첫 미팅에서 몇가지 질문에 대답한 것 말고는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미팅 자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 미팅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질문을 할 것이 있었기에 나름 말을 준비해서 미팅에 들어갔고 질문이 있으면 하라는 사장님의 말에 나는 손을 들고 질문을 가장한 건의를 하나 했다. 바로 특정 스포츠센터와 계약을 맺어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원래는 회사 9층에 간단한 체력단련실이 있었다. 하지만 직원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곳을 사무실로 개조해 사용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체력단련실은 사라지고 대신에 좀 외진곳에 있는 아파트헬스장 같은 곳과 계약이 되어 그곳에 가서 운동을 하게끔 안내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낡기도 했고 조금 멀어 거의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있었고 평소 체력단련실을 이용하시던 분들의 불만만 늘어갔다.
나의 건의사항을 들으신 사장님은 나에게 운동을 많이들 하냐고 물어보셨고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하고 그것이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씀 드렸다. 나에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신 사장님께서 나에게 직접 대안을 제출해 보라고 말씀 하셨고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몇몇개의 스포츠센터를 추려 사장님의 비서께 메일을 보냈다.
약 두달정도 지난 후 회사 전체 메일로 근처 스포츠센터와 계약이 되었으니 퇴근 후 방문해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공지가 있었고 그 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거나 아침일찍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지역 스포츠센터라 헬스뿐만 아니라 수영, 댄스, 골프, 스쿼시,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으며 회사 직원은 무료 혹은 월 2만원 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약 4년정도 나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스쿼시를 즐기고 있으며 현재는 훨씬 더 많은 직원들이 새로운 복지를 누리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복지는 아니다. 우리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일개 신입사원의 이야기를 사장님께서 귀담아 듣고 그것을 실제 실행하여 하나의 회사 제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경험이었고 소신있고 정당한 발언은 어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부터 나는 직급을 가리지 않고 꼭 해야할 말이거나 하고 싶은 말을 주저없이 말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나의 모습을 선후배들은 당당함, 혹은 자신감이라 부르며 좋게 봐 주었다. 이런 과정속에서 나의 회사충성도가 증가했음은 물론이고 동시에 회사에서도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손을 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 학생들은 학교에서부터 질문을 거의 잊어버리고 공부를 하고 있다. 질문 있냐는 선생님의 말씀에 조용한 교실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가끔가다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수업을 방해하는 것 같은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바보처럼 보일까봐, 남들은 다 아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손을 드는 용기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나쁜 질문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학생들의 질문 이었다. 자유분방함은 어느정도 예상한 바였으나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을 들고 자신이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몇몇 학생들은 질문을 물고 늘어지는 학생을 조롱하는 듯한 장난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정작 질문하는 그 학생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게 되고 결국 그것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때 나는 그들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질문하지 못했지만 그때 배운점을 토대로 현재 회사에서 실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에서 손을 들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질문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럿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사나 학교에서 지루하거나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 같다는 불안감과 따분함이 있는 사람일수록 질문을 해야한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당장 질문부터 해야하고 삶의 목표를 모르겠는 사람도 질문부터 해야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든, 혹은 자신 스스로에게든, 그렇게 손을 들고 질문 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볼 때 조금씩 당당해지고 밝아지는 자신과 주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워 말고 쑥스러워 말고 손을 들고 질문을 하자. 손을 들고 말하는 용기가, 용기내어 한 질문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많은 사람의 생활을 바꿀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