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날
아 나의 사랑하는 님은 떠났습니다... 또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홍콩으로 떠났습니다. ㅜㅜ 사정을 조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내와 저는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을 정말 정말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아내는 일 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계획해 놓고 그 날만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학생이 방학을 기다리고 직장인이 보너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죠.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여행이 더 소중해진 모양입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느라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찬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난 후부터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육아는 힘들죠. 그래서 찬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 즈음, 현금봉투를 건네며 호기롭게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자, 이거 받아. 선물이야"
"이게 뭐야??, 오?? 뭐야 뭐야??"
"이거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여행가"
"진짜??? 진짜지?? 나 진짜 간다? 말 바꾸기 없기!!"
"알았어~. 약속은 지킨다"
스스로가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땐 몰랐죠. 얼마나 힘들지;
그렇게 작년에 처음으로 3박 4일간 독박 육아 체험을 했습니다. 느낀 게 많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올해도 독박 육아체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아이가 크면 좀 더 쉬울 거라 생각했는지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드디어 첫날, 새벽 5시에 아내가 일어났습니다. 평소 잘 일어나지 못하기에 혹시나 해서 알람을 맞춘 탓에 저도 일어났죠. 찬이는 아직 곤히 자고 있고 아내는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6시 반에는 공항버스를 타야 했거든요. 아내를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9시가 조금 지나 평소보다 조금 늦게 찬이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26개월이 된 찬이가 말이 조금 트이고 나서는 아침에 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빠를 잡아끌며, "아빠 일어나~! 나갈 거야!" 하며 저를 재촉하거든요. 비몽사몽으로 안방 문을 열면 잽싸게 찬이는 거실 소파에 앉아 외칩니다. "바나나우유 주세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우유와 바나나를 넣고 갈아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다행인 건 오늘이 한글날이라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빨대컵에 바나나우유를 담아주니 "감사합니다~"를 외치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우유를 마시는 찬이. 이내 제 입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이런 게 아이 키우는 보람 중에 하나겠죠? 곧 아침을 준비합니다.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과 우유, 요플레. 어느새 바바나 우유를 모두 클리어한 찬이도 합류하네요.
어느 정도 아침을 때우고 난 후,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0시... 첫 번째 고비가 시작되는군요. 찬이가 보통 휴일에는 12시에 슬슬 낮잠 잘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났으니 더 늦어질 것 같아요. ㅜ.ㅜ
오전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퍼즐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책을 보고, 블록 놀이를 하고, 자석 놀이를 하고, 공룡 놀이를 하고.. 어느덧 시간은 11시 반이 다 되어가네요. 이제 슬슬 점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평소 같으면 제가 찬이랑 놀고, 그동안 아내가 점심을 준비 하지만 오늘은 혼자 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건 바로, "지니 야~" 불러봅니다. 티브이를 켜고 코코몽을 틉니다. 쏜살같이 소파 앞에 앉는 찬이. 그동안 점심 준비를 시작해야지요. 점심은 찬이가 좋아하는 콩밥, 멸치 그리고 김을 이용해 만든 미니 꼬마김밥. 다행히 잘 먹어주네요. 사실 음식 크게 가리지 않아서 너무 이쁜 우리 찬이~!
티브이를 끄고 다시 놀이를 시작합니다. 자꾸만 아빠 서재로 들어가는 찬이를 불러 세우고, 붕붕 차동차를 타고, 망치 놀이를 하고, 어부바도 해주고.. 그런데 아직도 12시입니다. ㅜ.ㅜ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가 가는 걸까요. 슬슬 찬이를 꼬셔 봅니다.
"은찬아~ 졸려? "
"아니야~! 안 졸려!"
ㅜ.ㅜ 실패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말해봅니다.
"은찬아, 아빠 졸려~~ 하~~ 움"
"아빠, 하지 마~! 하지 마~!"
찬이가 짜증을 내네요. 또 실패 ㅜ.ㅜ
조금 있다가 다시 시도해 봅니다.
"은찬아, 달님이 은찬이랑 아빠랑 들어오래~"
안방 벽에 걸려있는, 찬이가 좋아하는 달 조명으로 꼬셔봅니다. 찬이가 대답이 없네요. 다시 꼬셔봅니다.
"은찬아~ 우리 달님 보러 갈까???" "응~!" 아싸, 속으로 쾌재를 불러봅니다.
은찬이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고 문을 닫습니다. 달님을 켜고 달님에 빙의해 은찬이에게 말을 해봅니다
"우리 은찬이 잘 놀았어~~?? 이제 코~잘 꺼야?? 은찬이 잘 자요~"
은찬이도 대답합니다. "달님 잘 자요~~"
그제야 찬이가 이불에 눕네요. 역시 달님은 위대합니다~!!!! ^^
저도 옆에 누워봅니다. 은찬이는 옆에 누워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혼자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계속 질러댑니다. 무시하고 누워있어 봅니다. 눈은 감고 있지만 정신을 바짝 붙들어 매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찬이를 같이 잠들고, 같이 일어나게 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윽.
어느 순간 찬이가 조용해졌어요. 눈을 살며시 뜨고 보니 이제야 잠이 들었네요. 시간은 1시 40분. 대략 40분 걸렸네요;;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아, 행복합니다. 역시 아기들을 잠잘 때가 제일 이뻐요. ^^ 혼자 점심을 챙겨 먹고, 커피를 한잔 때리고 예능을 보다 보니 안방 문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네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찬이가 일어난 소리네요. 안방 문을 살며시 여니 잽싸게 뛰어나와 소파 앞에 앉아 눈을 비비는 찬이. 곧 간식을 준비합니다. 간식은 바나나. 물을 좀 먹이고 바나나를 잘라 줍니다. 배가 좀 고팠는지 순식간에 먹어 치우네요.
오후는 지루하고 날씨는 시원하고, 산책 나갈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멀리 가지 않고 동네 산책을 하기로 해요. 산책을 좋아하는 은찬이도 들떠서 준비를 합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 따뜻하게 입히고 가방에 은찬이 외출 대비용 물건들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서봅니다. 찬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외쳐 봅니다. "출발~"
평소 다시던 길로 산책을 합니다. 나뭇가지를 주워 찬이를 쥐어주고, 나무, 형아 누나들, 물, 돌멩이, 하늘, 비행기 구경을 하며 산책을 합니다. 이상하게 목이 너무 말라 카페에 들러 주스를 주문합니다. 어느새 의자에 앉아 주스를 달라고 외쳐대는 찬이.
딸기주스를 받아 다시 출발을 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으니 조금 돌아서 집으로 향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원주택단지를 통과하는 길로 방향을 잡아요. 각자의 개성이 있는 집들도 구경하고, 강아지풀로 장난도 치며 찬이와 산책을 또 시작합니다. 이쁜 꽃들이 보이네요. 찬이가 꽃을 보고 싶다고 해서 잠시 자전거를 세워봅니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어 보아요.
날이 좀 쌀쌀해지네요.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어느덧 6시가 다 되어가네요. 저녁을 준비합니다. 저녁은 아내가 해 놓고 간 돼지고기 주물럭을 볶아 준비합니다. 그동안 찬이에게는 로보캅폴리를 틀어줍니다. 혼자니까 어쩔 수 없어요 ㅜ.ㅜ 뚝딱 간단히 밥을 차려 같이 먹어봅니다. 고기를 살코기 위주로 잘게 잘라줍니다. 젓가락으로 곧잘 집어먹는 찬이. 콩도 먹고, 멸치도 같이 잘 먹어 너무 이뻐요. ^^
지금부터는 이제 좀 익숙합니다. 항상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을 같이 먹는 것부터 전 육아를 시작하거든요. 다만 오늘은 다 혼자 해야 한다는 거.. 또르르. 밥 먹는 동안 코코몽의 힘을 빌려 저도 조금 쉬어 봅니다. 얼른 설거지를 하고 찬이와 목욕을 합니다. 목욕을 마치고 로션도 바르고 옷도 갈아입고 형광등을 끄고 조명도 따뜻하게 바꿔봅니다. 시간은 이제 겨우 8시. 최소 9시 반은 돼야 졸려하니 다시 열심히 놀아줄 시간이에요.
아빠 공룡을 태워주고, 철봉도 하고, 그네도 타고, 퍼즐을 (또)하고, 책도 (또) 보고, 블록도 (또)하고, 스티커 놀이도 하고, 북도 치고 열심히 놀아줍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내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오네요. 너무 반가워하는 두 사람. 감격의 영통을 마치고 이제 슬슬 다시 찬이를 꼬셔 봅니다.
"은찬아~ 달님 보러 갈까?? "
"아니야, 이거 하고 갈 거야~" 바로 넘어오지 않네요. ㅜ.ㅜ 조금 더 놀아줍니다.
"은찬아~ 우리 달님 보러 가자~" 또 꼬셔 봅니다.
잠시 고민하더니 드디어 일어서네요. 찬이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누워 봅니다. 살짝 잠이 들었다 깨보니 어느새 찬이는 자고 있네요. 시계는 10시 반. 혼자 재운 거 치고는 양호합니다. 드디어 이제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 이렇게 독박 육아의 첫날, 무사히 미션 완료하였습니다~~!!! 내일은 어린이집 가는 날이니 오늘보다는 쉬울 것 같아 다행이네요. 휴~
말이 좀 통하면 육아가 더 쉬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요구사항이 더 구체적으로 변하니 도저히 안 해 줄 수가 없어요.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분명하니까요. 그렇지만 그 조그마한 입으로 "아빠, 사랑해~"하면서 뽀뽀하고 안아줄 때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아 너무 행복하기도 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들지만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을 주고,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 육아가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육아를 하시는 모든 엄마들을 존경합니다. 당신들은 그 어떤 직장인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것과 같아요. 부디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아빠들이 먼저 그것을 인정해 줘야겠죠?
엄마가 없어서 찬이가 울고불고 난리 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네요. 평소에 육아에 나름 많이 참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 거겠죠?? 엄마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으니까. 스스로도 조금 칭찬해 봅니다.
"은찬이 엄마는 후회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놀고 오도록!" 보고 있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