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것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 말인데 지금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말이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무언의 압박은 개인은 물론이고 조직을 병들게 만든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합리화한다. 침묵은 금이라고.
적절한 침묵은 때론 그 어떤 말보다 강하고 적절하다. 하지만 회사나 학교에서 무언의 압박으로 인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질문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침묵은 똥이다. 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았고 남들 눈치 보기 바빴다. 한마디로 바보 같았다.
지금은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고, 생각이 다르면 말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얄팍한 걱정은 이제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보통 회사에서의 회의 모습은 이렇다. 길쭉한 테이블 끝 상석에 회의를 진행하는 사장님이 앉고 좌우로 직원들이 직급순에 맞춰 줄지어 앉는다. 한참이나 사장님의 발언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돌아온다. 그 순간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침묵이 찾아온다. 가까스로 어색한 침묵을 깬 부장님은 대체로 사장님의 의견에 동조하며 회의는 끝난다.
내가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하고 난 후의 회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여서 조금은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직원이 한국 사람이 아닌가. 당연한 거였다. 몇 개월이 지나고 사장님 주최로 비정기 회의가 열렸다. 직원들의 불만이나 건의사항을 접수한다는 명목이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역시나 아무도 발언하는 사람은 없고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건의사항이 떠오른 나는 고민 없이 손을 들었다. 일제히 나에게 쏠리는 시선. 괜히 쓸데없는 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눈빛들. 감히 사원 주제에 어디서 지금 이야기하냐는 꼰대의 시선.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의 건의사항을 사장님께 당당히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의 건의사항으로 직원들의 해외출장 형편이 상당히 좋아졌다. 그 누구도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뿌듯함은 오직 나의 몫이었다.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룬 쾌거. 나의 의견을 당당히 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회사 생활은 줄곧 이런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직원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지금은 이런 나의 장점을 잘 품어 주시는 팀장님을 만나 나의 능력을 잘 펼치고 있다.
구글에서 진행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성과가 좋은 팀의 비결은 무엇인지 찾는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구글은 전 직원 앞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수한 팀의 공통적인 특징은 뛰어난 인재나 훌륭한 리더십이 아니었다. 협의를 잘 이루어 내거나 높은 신뢰도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니었다. 성과가 우수한 팀의 공통적인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 내에서 발언 기회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는 것. 그리고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비난받거나 불이익 받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을 말한다.
결국, 회의나 팀원들 간 대화 시에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철저히 지키는 팀은 성과가 좋을 수가 없다. 반면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고 토론이 가능한 팀은 성과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 그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는 직원은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도 소심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교환학생 시절 독일 학생들이 당당하게 수업 중에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후 나는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에는 침묵을 하며 중간을 지키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필요할 때 침묵하는 것은 내가 속한 팀에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땐, 하고 싶을 땐 손을 들고 침묵을 깨자.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순간이다. 하지만 침묵으로 흘려보낸 성장의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