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는 인생이다>
코로나 영향인 줄 알았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고 외출도 자제한 탓에 이제 31개월 차 접어든 아들의 짜증의 빈도와 강도가 심해졌다고 생각했다. 4월에 접어들고 어린이집도 간간히 보내게 되고 나서는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원인은 코로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에 아내와 나는 드디어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아내와 나는 둘 다 미친 듯이 각자의 작업에 열중했다. 나는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서 인생의 새로운 2막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내 또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집에서 여러 가지 일과 작업을 했다. 점심 먹는 것도 잊은 채 각자의 일, 혹은 꿈에 집중했고 아들의 하원 시간은 너무나 빨리 다가왔다.
아들을 하원 시키고 집에 있을 때면 아들은 놀아달라고 때를 썼다.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고, 블록을 들고 와 쏟아부으며 같이 놀자고 했다. 아내 혹은 내가 번갈아 가며 놀아주었고 아들과 놀지 않을 때는 낮에 했던 각자의 일을 조금 더 마무리하거나 핸드폰으로 또 다른 스터디를 했다.
날씨가 좋아 산책을 나가거나 놀이터에서 나가면 아내와 나는 각자의 성과 혹은 공부한 내용을 서로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아들은 곧장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끌며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은 관심을 다시 돌리려 애썼다. 그러다 어느 하원 하는 날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했다.
"아버님, 찬이가 오늘 책을 보는데 책에 나오는 고릴라를 보고 갑자기 엉엉 울었어요. 혹시 고릴라를 무서워 하나요? " 아들이 그렇게 울 정도로 무서워하는 동물은 없었기 때문에 아니라고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지만 최근에 배변훈련을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는 결론을 지었다.
그다음 날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나자 어린이집 선생님은 배변훈련을 좀 더 뒤로 미루기로 했고 아내와 나도 더 이상 배변훈련으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낮에 잘 놀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밤에 자다가도 갑자기 울며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졸랐다. 뭔가 문제의 원인이 있음을 아내와 나는 직감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럴 때라며, 미운 4살은 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한 가지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최근에 아들에게 무관심했던 것. 가슴 아픈 결론이지만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발달상 그럴 나이가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들은 그 누구보다 밝고 명랑한 아이다. 넘어져도 우는 일도 없고 훌훌 털고 일어나 피 안 났다고 먼저 말하는 아이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운다는 것은 무언가 아이의 무의식이 나와 아내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만져주고 안아달라고 말이다.
엄마의 다정한 손길은 자식에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후생적' 변화를 일으키고 아동기에 경험한 보살핌은 지문처럼 평생 남아 건강 개선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
<피부는 인생이다>의 저자 몬티 라이먼 박사는 신체접촉이 실질적인 치유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흔히 알고 있는 캥거루 케어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더 나아가 라이먼 박사는 부모의 다정한 손길이 자식에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후생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어릴 적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억, 즉 뽀뽀하고 포옹하고 서로의 살을 맞댄 기억과 경험이 아이를 더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게 만든다.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일, 목표, 꿈에 열중한 나머지 아이에게 소홀하고 말았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니길 바라며 아내와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아이가 있을 때는 핸드폰은 저 멀치 치워버리고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보지 말 것. 더 많이 손을 잡아주고, 더 많이 뽀뽀를 하고 더 많이 안아줄 것. 더 더 많이 피부를 맞댈 것. 피부를 맞대고 더 많이 만져주는 것은 단순한 사랑 표현을 넘어 진정한 치유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체 접촉은 생물학적 측면에서나 인지적 측면에서 모두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여 사랑받는 느낌,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이는 스트레스 감소로 이어진다. 또한 뇌와 인체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서 혈압 감소부터 면역력 개선까지 인체에 다양한 형태로 변화가 나타난다. 신체 접촉에 담긴 치유 효과가 우리 마음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연구가 이어질수록 접촉이 가진 더욱 놀라운 힘이 드러나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포옹은 실질적으로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 '행복'을 느끼게 하는 여러 종류의 호르몬을 배출시킨다. 또한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을 때 문질러주는 손길은 통증 수용체가 아닌 다른 수용체들을 활성화시켜 일시적으로나마 통증을 약화시킨다. 이 외에도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여러 가지 인체에 다양한 유익한 변화를 일으키는 신체접촉은 알면 알 수록 더욱 놀라운 세계다.
마치 아들이 이 책을 나에게 읽으라고 준 것만 같다. 더 많이 안아주고 만져주고 사랑해 달라고 아들이 나에게 책을 통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불안함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발달과정상에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너무 과민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따뜻한 신체접촉이 아들과 나에게 유익한 것만은 분명하다.
'C 촉각 섬유'로 알려진 이 정서 촉각의 신경은 털이 있는 피부에서 발견된다. C 촉각 섬유는 가벼운 접촉도 민감하게 감지하며 이 섬유에서 발생한 신호는 훨씬 더 느긋하게 시속 3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뇌에 전달된다. 이 신호는 우리가 접촉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신호가 아닌 그 접촉으로 발생한 정서 신호에 해당한다. 섭씨 32도에서 초당 2~10센티미터의 속도로 닿는 것이 이 감각을 촉발하는 가장 이상적 조건이라고 하니 살결이 서로 닿을 때 완벽한 손길을 느끼고 싶다면 이 기준을 참고하기 바란다.
좀 더 완벽한 아들과의 접촉을 위한 팁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정서적 역할을 하는 촉각 섬유인 'C 촉각 섬유'는 초속 2~10 센티미터의 속도로 닿을 때 가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속도다. 초속 10센티미터, 어느 유명 애니메이션의 제목처럼,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게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자주 쓰다듬어야겠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인간다운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피부를 통해 느끼는 촉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인간은 피부로 많은 것을 느끼고 피부는 우리 몸에서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촉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고 보살피는 것에 대해 배운 것만으로도 이 책에 고마워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눈을 마주하고, 좀 더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고, 초속 10센티미터의 속도로 따뜻하게 쓰다듬자.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서로를 치유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