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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생각 24: 해돋이를 가는 이유

by 배정철

#해돋이 #새해아침


오십 년 넘게 매년 찾아오는 새해 아침.

그 긴 세월을 한 해도 빼먹지 않고 어김없이 매년 찾아온다.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속절없이 빨라지는 그 아침이 애타게 기다려질 리는 없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세밑 그믐날과 새해 아침에는 왠지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사람 생각이 짙어진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멀리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나고, 사이가 좋든 싫든 피붙이들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살아오면서 오래 알고 지낸 선배와 후배, 지인들에게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는 듯 안부를 묻는다.


간단히 주고받는 문자나 별일 없이 살아간다는 목소리만 들어도 잘 사는구나 싶어 안심이다. 가까이 사는 누군가와는 시간을 맞춰, 지난 한 해 살아온 날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다면 새해맞이로는 그만이다.


특별히 소망을 빌 것도 없거니와 빈다고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소원을 빌어 보려고 새해 해돋이를 나간다. 해외 살이 등 이유로 몇 해 동안 해돋이를 나가보지 못했고, 동해나 어디 멀리 갈 형편이 안 되어 근처 세종 보행교로 갔는데, 노력과 정성의 부족 탓인지 기대했던 해돋이의 장관을 보지 못했다.


미리 이것저것 생각한 바는 없으나, 그래도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해를 보면서 한두 가지 소원 정도는 빌어 보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불발이다. 먼 길 찾아온 것도 아니거니와 날씨도 예전만큼 춥지 않아 실망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아쉬움을 다리 위에 두고 발길을 돌리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받는 소심함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몇 해 전, 밤 기차를 타고 갔던 여수 선상 해돋이의 추억이 새롭다. 소원 성취의 여부를 떠나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족의 행복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어 나름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한겨울 밤을 달려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2023년 새 아침에 뜨는 해가 전날 아침의 그 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새해 해돋이에 의미를 두는 것은 새해 아침의 그 해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일 게다. 해는 다르지 않더라도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의지, 달라지고 싶다는 소망, 이런저런 형편이 조금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 때문이다. 새해 아침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스스로 다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에게만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긴 새해 아침 해를 보며 그러지 못했다고 다짐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테고, 그런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살아간다. 1월의 다짐과 생각이 12월에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나아졌는지, 달라졌는지는 혹은 잊혔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 하룻밤이 지나면 해는 다시 떠오를 테고, 나는 또 한 해를 뚜벅뚜벅 살아갈 테니까.


그래서, 매일 아침 뜨는 해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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