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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29: 먼 나라의 지진 피해를 보며

by 배정철

2023. 2. 6.(현지시각) 새벽,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터키) 남부와 시리아 국경 지대를 강타했다. 6일 23:00 현재 사망자만 2300명을 넘어섰다는 AP․로이터통신의 보도다. 이번 지진은 1939년 3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지진과 동일한 규모의 강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2023년 1월 한 달만 해도 모두 8차례의 지진이 보고되고 있다. 지진의 규모(21.~3.7)가 크지 않아서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발생의 빈도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수능을 하루 앞둔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경상북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수능을 1주일 연기하는 등 그 파장이 컸다. 당시 근무하던 교육부는 수능 문제지가 수능 고사장 주변 교육청 등에 배송되어 있던 상태라 보안 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교육부 직원들도 조를 편성해서 시험지가 있는 장소로 가서 밤을 새운 기억이 새롭다. 나는 충북 충주교육지원청으로 가서 3일간 근무를 했는데, 교육청 직원, 경찰관 등이 조를 편성해서 1주일 내내 긴장하며 지냈다.


한국의 지진 피해는 주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외의 자연재해가 적지 않은 나라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 피해, 봄가을 갈수기 때는 강수량이 적어 가뭄 피해, 겨울에는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폭설 피해도 잦다. 무엇보다 6월~9월 사이의 태풍에 대한 염려와 피해가 크다. 나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를 사랑하지만, 마냥 축복받은 나라는 아닌 듯하다.


이집트나 태국이라면 어떨까? 너무 더운 나라, 덥다 못해 뜨거운 나라. 이집트는 사막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 오르고, 태국은 후덥지근한 한여름을 생각나게 한다. 틀린 말을 아닌데 막상 살아 보니 그렇지도 않다.


이집트 카이로에 4년(2004년~2008년)을 살았다. 겨울인 2월 초에 도착했는데 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겨울이라 해도 영상 10도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살면서 차츰 익숙해지는지 영상 10도의 겨울에 전기장판을 켜고 살기는 했지만, 우리의 겨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가는 날도 종종 있다. 그럴 때는 햇볕이 드는 쪽에서 활동하기는 힘들어도 그늘진 곳에 있으면 지낼만하다. 습도가 높지 않은 마른 더위라 나무 그늘 밑에만 서 있어도 선선할 정도다.


무엇보다도 자연재해가 없다. 4년 동안 살면서 지진, 태풍, 홍수, 가뭄 피해를 겪어 본 적이 없다. 겨울에 가끔 비가 내리는데, 카이로 시내 배수처리 시설이 잘되어 있지 않아서 도로 웅덩이에 물이 고이고, 노후 차량이 멈춰서 있어 차가 좀 막히는 정도. 재해라기보다는 21세기의 광경치고는 좀 웃픈 그림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알려진 나일강이 아프리카 남부에서부터 카이로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가는데, 이 강의 유량이 엄청나다. 남부 아스완 댐이 있는 지역에도 강에 큰 크루즈 선박이 다니고, 카이로 시내 나일강에는 수십 대의 배가 카이로의 야경을 수놓는다. 그러니 강수량이 적어도 가뭄 피해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일조량이 좋아서 관개시설만 갖추면 식물이 잘 자란다.


당시 카이로한국학교 텃밭에 바나나 묘목을 하나 구해서 심고 물만 잘 주었더니 몇 달만의 크게 자라서 바나나가 열리고, 땅 속으로 뿌리를 뻗어 새로운 바나나가 자랐다. 어느 날에는 학교 가는 도로 화단에 큰 나무 둥치를 세워 둔 걸 본 적이 있어 의아해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잎이 돋아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집트에서는 물만 주면 자란다는 건 사실이었다.


태국에서는 3년(2019년~2021년)을 살았다. 3월~5월의 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송크란 축제가 한여름 최고 더위 시기에 열린다), 6월부터 10월까지 우기인데, 이 시기에 비가 자주, 많이 내린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때문에 한동안 도로가 침수되고 차량 운행이 통제되기도 한다. 갑자기 비가 오면 고가도로 아래쪽에 오토바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겹고 낯선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편하기는 해도 인명피해까지 주는 경우는 드물다(2011년에 홍수로 인해서 3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컸다고 한다).


우기 때는 비가 내리고 나면 한동안 기온이 내려가니 지내기에 좋은 면도 있다. 골프장 그늘집에서든, 집 테라스에서든, 학교 창가에서든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건 참 좋다. 11월부터는 건기라 태국의 최상의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가끔 남중국해 등에서 발생한 태풍이 올라오긴 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지진도 거의 없고, 태풍,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없다.


한국에 비하면 이집트와 태국이 기후면에서는 더 축복받은 나라인 듯 싶다. 어느 곳이든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장점은 즐기고, 단점은 대처해서 극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카이로 사는 교민들은 그곳이 좋다고 하고, 방콕에 사는 지인들은 그곳이 한국보다 더 살기 좋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나는, 그곳이 가끔 그립고 그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여기 이곳에서 한겨울의 추위를 느끼며 사는 것도 좋다.


그나저나 튀르키예의 피해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생명들을 더 구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지진 #튀르키예 #카이로 #방콕 #자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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