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할까요? / 허영만 / 예담
만화가 허영만이 그린 커피에 대한 만화책입니다. 예전에는 만화를 볼려면 만화가게로 갔었는데 요즘엔 서점에서 이렇게 만화책을 사서 보게 됩니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만화방으로 달려가기도 했던 국민학교 다닐 때의 기억도 새롭습니다. 만화 볼려고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몰래 동전을 꺼내갔다 혼난 적도 있구요. 중고등학교 때는 좋아하는 이현세의 까치와 엄지 이야기에 푹 빠졌던 적도 있죠. 컬러TV도 없었고 인터넷이라는 말도 없던 그 시절은 만화가 훨씬 친숙한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어디엔가에 있는 만화방에 앉아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가는 아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긴 요즘에는 만화 말고도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스마트폰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만화를 볼 수 있으니 굳이 만화방에 가지도 않겠네요.
이 책은 커피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날에 대한 이야기, 그냥 기계로만 쉽게 뽑아낸다고 생각했던 에스프레소의 깊은 맛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커피 자판기에서 묻어 있는 추억이 달콤한 믹스 커피향과 함께 사람의 향기를 솔솔 풍겨냅니다. 가끔은 커피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날이 있잖아요.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혼자 일찍 깬 날 아침, 기대하지 않았던 첫 눈이 내리는 날, 그런 날엔 커피 생각이 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거리에서 10대 시절에 듣던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는 날은 왠지 찐한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신호등에 멈춰 서 차장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에 들어오는 날, 커피향이 그리워집니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던 사람들도 이런 날에는 커피향이 코끝에 몽글몽글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커피 마니아라면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제격이죠. 강한 쓴 맛이 입안을 한 바퀴 돌아 목구멍을 따라 흘러갈 때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톡톡 깨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처음 접할 땐 쓴 맛에 몸서리 치다가도 두어번 모험을 하고 나면 그런 짜릿함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인스턴트 믹스 커피만을 먹다가 아메리카노를 시작으로 커피를 알게 된 것은 2009년 쯤 일입니다. 예전 근무지였던 경남교육청 건너편 경남신문사 1층에 새로 생긴 커피점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부터입니다. 그곳은 다른 커피점이 문을 열기 전인 이른 아침에도 커피를 살 수 있는 곳이라 좋았습니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 한 손에는 커피 한 잔을 든 자신의 모습이 좀 괜찮아 보인다고 착각하며 살던 시절이었죠. 2,500원짜리 커피 한 잔이 주는 아침의 행복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러다가 커피에 대한 책을 사 보기 시작했습니다. [커피 마스터클래스/신기욱],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하세요/김훈태], [스타일이 살아있는 핸드드립 커피/서지연, 최유미] 등을 통해 커피의 여러 모습들을 접하게 되고, 핸드드립 커피도 알게 되었죠. [커피견문록/스튜어트 밀], [매혹과 커피의 잔혹사/ 마크 팬더그라스트]를 읽으면서 커피가 지나 온 길과 그 길을 함께했던 아프리카, 아랍, 남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랑 커피를 마시다 '모카' 커피의 유래에 대해 얘기를 해 주면 다들 놀랍니다. '모카'를 그저 커피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긴 커피점 메뉴에 '모카커피'가 있으니 그럴만도 하죠. 모카치노, 모카라떼, 카페모카...커피메뉴에 모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커피에 초코시럽이 들어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달달한 커피를 원하시면 모카가 들어가 있는 커피를 주문하면 된다는 뜻이죠. 모카치노는 에스프레소에 초코시럽을 넣은 것이고, 에스프레소에 스팀우유를 넣고 초코시럽을 올리면 모카라떼가 되고, 여기에 휘핑크림을 올린 것을 카페모카라고 합니다. 사실 모카(Mocha)는 중동에 있는 예맨의 항구 이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에 있는 나라가 예맨인데, 이 나라의 서쪽 해안가에 있는 도시입니다. 홍해 건너편에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가 있죠. 내가 4년 동안 살았던 이집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 때는 커피를 잘 알지 못해서 에티오피아나 예맨에 가볼 생각을 못했던게 못내 아쉽네요.
커피가 최초로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홍해를 건너 모카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곳으로 전해진 커피가 15~17세기에 본격적으로 경작되고 수확되어 이웃 중동 지역과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도 퍼져 나가게 된거죠. 모카에서 재배되는 커피인 '예맨 모카 마타리'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와 함께 세계 3대 커피로 불립니다. 특히 예맨 모카 마타리는 인상파 화가인 고흐가 어려운 형편에도 이 커피를 즐겼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고흐의 커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밤의 카페테라스>가 있는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고흐가 그 카페 어디쯤에 앉아 마타리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대학로 서울대 병원 옆에 학림다방이 있습니다. 1956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니 60년이 넘었네요. 다방에 들어가려면 요즘엔 보기 힘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문을 열면 옛시절의 향기가 새벽 안개처럼 밀려옵니다. 복층으로 되어 있는 구석자리가 특히 아늑한데, 그 곳을 스쳐간 많은 이들의 흔적들도 드문드문 볼 수 있습니다. 학림다방은 비엔나커피로 유명합니다. 비엔나커피는 아메리카노에 달콤한 휘핑크림을 듬뿍 올려서 만듭니다. 첫 맛은 크림의 부드러움을, 그 다음엔 커피의 쓴맛을, 시간이 지나면 둘이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득 비엔나커피의 여러가지 맛이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커피의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Vienn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비엔나에서도 비엔나커피가 유명할까요? 답은 '아닙니다' 입니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어요. 비엔나커피의 원래 이름은 '아인슈패너(Einspanner)'인 까닭입니다. 아인슈패너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뜻인데, 그 옛날 마차를 몰던 마부들이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뜨거운 커피에 크림을 올려 마시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2010년 KBS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현빈과 하지원의 카페라떼를 이용한 일명 거품키스가 방송되면서 비엔나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대학로에 가면 비엔나커피의 크림을 입술에 묻혀가며 마셔보는 것도 괜찮은 추억 만들기가 되겠네요.
진주 남강변 경남문화예술회관 뒤편에 있는 [자연 담은 이야기]의 남자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맛이 참 좋습니다. 진주 신도시 한켠에 자리잡은 [문정희 커피]의 핸드드립 맛은 아무나 낼 수 있는 맛이 아닙니다. 창원시 대방동 뒷길의 [더 하우스] 커피점 사장님은 그 투박한 손으로 어떻게 그렇게도 부드러운 커피 맛을 낼까요? 김해시 김해교육청 건너편에 있는 [폴인커피]의 하와이안 코나 맛은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생각납니다. 용호동 가로수길 뒤편에 있는 [소리고을] 안주인이 내리는 케냐AA의 풍미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입니다. 그리고 장군면 너머 공주가는 길에 있는 [달비채]의 젊은 사장님의 핸드드립 커피맛도 일품입니다. 강릉의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이나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테라로사]의 커피를 마시기 위한 주말 여행도 해 볼만합니다.
한 동안은 볶은 커피콩을 사서 핸드밀로 갈아 핸드드립을 해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요즘엔 로스팅 기계도 사고, 전동 그라인더도 구비해서 제법 커피마니아 흉내를 냅니다. 일전에 누군가가 그 귀하다는 <코피 루악>을 구해 준 적이 있는데, 맛을 보고 사진도 찍어 블로그에 올려 두었었습니다. 그 사진과 글을 본 <식물의 인문학>을 쓰신 박중환님이 그의 책에서 이미 '커피마니아 배정철님'라고 책에 써주셨으니 이미 공인을 받은거나 마찬가지죠.
비가 오네요. 비 오는 날에는 커피 향이 더 진해집니다. 공기 속에 있는 습기가 커피향을 더 오래 잡아두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잔 할까요? 커피향처럼 사람의 향기도 오래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