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 / 김훈태 / 2010.12. 갤리온
커피 1: 프리마 1:설탕 1
2004년도에 카이로에 살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커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을 때죠. 그래도 늘 식사 후에는 커피 한 잔을 했습니다. 학교에 손님이 오기라도 하면 하루에 다섯 잔을 마시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아메리카노를 사 먹거나 드립을 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에 프리마와 설탕을 섞어 마시는 일명 '다방커피'를 마셨죠.
맛있는 다방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합을 잘해야 합니다. 보통은 커피, 프리마, 설탕을 각각 두 스푼씩 넣는데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죠. 커피를 타는 사람에 따라 맛도 다릅니다. 맛도 맛이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커피, 프리마, 설탕을 각각 통에 담아두고 일일이 타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인스턴트 믹스커피가 나온 이유겠죠.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크림 또는 프림을 함께 포장한 것을 믹스커피라고 하는데, 1976년 동서식품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합니다. 믹스 한 봉지에 끓는 물만 있으면 쉽게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실 수 있다는 편의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맛본 맥심모카골드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요즘에도 여전히 믹스커피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믹스커피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시나이 산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 산에 올라타지 않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리는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 해방을 소명받은 곳입니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고, 다시 이 산에 올라와서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고(출애 20장) '모세산'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온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는데, 아침에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어두운 새벽에 등반을 합니다.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돌산이지만 아침의 태양빛은 받은 붉은 돌산이 주는 장엄함은 모세가 느꼈을 그것과 같을 겁니다.
200년에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함께 이 산을 올랐는데, 정상 부근에는 기온이 꽤 낮습니다. 매점에서 대여해 주는 담요로 몸을 두르고 부덜부덜 떨며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 여행을 오신 분들이 아이들 먹으라고 컵라면을 주면서 맥심 믹스커피 2개도 함께 주시더군요.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게 컵라면과 믹스커피지만 이집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 너무 반갑고 고마웠죠. 그때 마셨던 그 믹스커피 맛은 이집트를 기억하는 하나의 추억입니다.
삶의 고단함을 달래 준 믹스커피
예전에 식사를 마치고 밥상을 물리기 전에 먹고 마셨던 숭늉을 대신하게 된 게 믹스커피가 아니었나 싶네요.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하는 게 일상이었죠. 요즘 직장인들이 식사 후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처럼요. 아메리카노와 다르게 믹스커피에서 왠지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맛이 있습니다. 농촌 들녘에서 새참을 먹은 후에 마시는 커피, 이른 새벽 노동시장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마시는 커피, 여름 소나기에 잠시 일손을 놓고 땀을 닦아 내며 마시는 커피가 바로 믹스커피니까요.
믹스커피의 절반이 설탕 성분이라고 해서 건강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설탕 없이 그냥 원두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가끔은 달달한 믹서커피를 찾게 됩니다. 요즘은 커피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죠. 직장 사무실이나 휴게 공간에 커피 머신을 두는 곳도 흔하고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믹스커피에는 대개 로부스타(Roubusta) 커피 종이 사용됩니다. 아라비카(Arabica)종을 섞어 쓰기도 하지만 로부스타가 상대적으로 값이 싸기 때문에 더 많이 사용됩니다. 로부스타 종은 강수량이 많고 기온이 높은 서남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저지대 지방에서 대규모로 재배됩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이 대표적인 로부스타종입니다.
반면에 아라비카는 강수량은 1500~2000mm, 평균기온은 15~24도, 해발 600m ~2,000m의 선선한 고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특히 화산재로 인해 물 빠짐이 잘 되는 토양에서 주로 재배됩니다. 대신 로부스타보다 병충해에 약한 단점이 있네요. 브라질, 콜롬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칠레, 파라과이 등에서 재배되며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 이상이 아라비카 종입니다. 로부스타에 비해 아라비카 종이 더 비싸고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느 커피 광고에 배우 고현정이가 나와서 100% 아라비카로 커피를 만든다고 강조하기도 했었죠.
로부스타 종은 저지대에서 재배되므로 기계로 수확을 하기 쉬워 덜 익거나 벌레 먹은 것 등 품질이 좋지 않은 게 많이 섞여서 전체적으로 질이 떨어집니다. 반면에 아라비카 종은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고산지대에서 자라기 때문에 소규모 농장이 많습니다. 농부들의 세심한 손길이 많이 가죠.
커피나무 : 칼디, 하라, 모카, 고흐
언젠가 강릉에 있는 유명한 커피 가게인 테라로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작고 어린 커피 묘목을 4그루 사 왔습니다. 그루라고 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작은 나무였습니다. 동봉해 주는 설명서에 3~4년 정도 잘 키우면 재스민향이 나는 하얀 커피꽃 피고 열매가 맺는다고 되어 있더군요. 각각의 나무에 칼디, 하라, 모카, 고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언젠가 그 나무에 핀 꽃을 보고 그 열매로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잘 키워볼 생각입니다.
커피나무의 열매를 체리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앵두와 모양과 크기가 비슷합니다. 말랑한 과육을 벗겨내고, 딱딱한 씨앗을 건조한 상태를 생두(green bean)라고 합니다. 생두를 로스팅한 것을 로스팅 원두라고 하고 이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만들죠.
지금처럼 아메리카노가 흔하기 전에는 인스턴트커피를 흔히 커피라 부르고, 그냥 원두를 추출한 커피는 원두커피라 했습니다. 커피전문점이 많이 생긴 이후로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 커피도 좀 세분화되었네요. 일본도 사정은 비슷해서 원두커피를 '레귤러커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본은 커피를 우리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접했고, 드립커피도 발달해서 커피 장인들이 많습니다. 강릉 보헤미안커피공장의 박이추 님은 우리나라 커피 1세대 커피 명인이신데 일본에서 공부한 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본에 가 보면 커피전문점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도쿄, 오사카, 오키나와, 대마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커피가게가 어딨는지 물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더군요. 커피를 일본어인 '고히'라고 해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입니다. 일본이 커피 선진국이 맞나? 싶더군요.
핸드드립의 수고로움
로스팅한 원두를 드립퍼에 담고 온수를 통과시켜 추출하는 커피를 핸드드립 커피라고 합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은 이 외에도 사이펀, 프렌치 프레스, 모카포터, 터키식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커피 종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핸드드립의 경우,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터키 커피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 종이를 사용하다가, 그 방법을 편리하게 개량해서 깔때기(멜리타 드리퍼)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 드립 커피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드립 기구들이 일본으로 넘어와 개량된 것이 지금의 핸드드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멜리타를 개선하여 추출구가 3개인 칼리타, 한 개의 큰 추출구 방식인 고노, 회오리방식의 하리오 등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냅니다.
핸드드립은 커피머신으로 내리는 방식에 비해 귀찮은 점이 많습니다. 커피를 알맞게 갈아야 하고, 드립 주전자에 물을 옮겨 담아 적당한 온도로 가늘게 물을 떨어뜨려 추출해야 합니다. 추출한 후에도 커피 찌꺼기와 커피 필터를 처리해야 하는 등 일거리가 많아지죠.
핸드드립을 해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동창회 산행을 가고 딸아이들이랑 온종일 집에서 같이 있던 날입니다. 아침을 먹고 큰 애가 설거지를 하고, 나는 커피를 내렸습니다. 드립 기구들을 살 때 같이 배달되어 온 원두로 드립을 했습니다. 원두는 로스팅이 많이 되었는지 프렌치(7단계)나 이탈리안(8단계) 정도로 아주 까만 색깔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추출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내린 커피를 마셔보니 커피 맛이 아니었습니다. 싱크대로 가서 그대로 부어 버렸죠. 그러고서는 다시 물을 끓이고, 주전자에 붓고, 커피를 다시 갈고, 드립퍼에 거름종이 올리고, 물 붓고... 설거지를 하던 큰 아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왜?"
"무슨 커피를 그렇게 복잡하게 마셔요?, 그렇게 해야 돼요? 그냥 믹서커피 타서 마시지~"
혀 차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혀를 찼을 겁니다.
김훈태가 쓴 <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라는 책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참된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수고로움과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거림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진실의 힘으로 그들을 감화시켜야 한다.'
진실의 힘이 무엇인지, 비아냥 거리는 그들을 어떻게 감화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참된 커피를 즐기기 위한 수고로움은 언제나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고로움 뒤, 혀 끝에 전해지는 커피 맛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라고 혼자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