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4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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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레 4코스(표선해수욕장~남원포구) 19km다(걸어보니 21km).
아침 식사는 친구가 보내 준 스타벅스 커피와 케이크. 남원 DT점 2층 창가에 앉아 먼지가 뿌옇게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인다. 이름도 제목도 가사 내용도 알 수 없는 잔잔한 노래에 맞춰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느낌,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어지러이 노래를 따라 흘러간다.
올레 4길은 표선해수욕장에서 남원포구까지다. 숙소와 가까운 종착점 남원포구에 주차하고 시작점인 표선해수욕장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제주 올레길은 시작점과 종착점으로 이동하는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 미리 차편을 고려하지 않아도 좋고, 배낭에 짐을 다 넣고 백패킹으로 코스를 따라 걸으며 숙소를 정하는 것도 할만하다. 서해 쪽 서해랑길과 강원도 운탄고도 1330 트레일에는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아 백패킹은 쉽지 않다. 백패킹을 하려면 텐트 장비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
201번 버스, 오전에 어디를 가시는지 할머니들이 여럿 타고 내리신다. 대부분이 할머니다. 할아버지들은 다들 어디에 계실까? 아침 드시고 따뜻한 방에서 등 지지고 계실까 아니면 세상을 먼저 떠나신 걸까?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이(2024년 1월 기준, 여성 90.7세, 남성 86.3세) 여자가 4~5세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길을 걷다 햇살이 잘 드는 바닷가 길가 한쪽에 낡은 의자가 줄지어 놓였는데, 그 의자 중 한 자리에만 할머니가 앉아 햇볕을 쬐고 계신다. 여일곱 빈 의자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제 아파트 정자 쉼터에 가도 놀던 동무들이 없다고, 다들 먼저 떠나버려서 얘기 나눌 친구가 없다고. 길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저 빈 의자에,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표선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린다. 해수욕장으로 내려간다. 썰물 때인지 바닷물이 멀리 빠져나갔다. 모래해변이 가로로 긴 여느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물 빠진 모래밭이 족히 500m는 될 만큼 멀다. 여름날 물때를 잘못 맞추면 바닷물에 발 담그려다 땀깨나 흘리겠다. 대신 밀물 때 물이 들어오면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놀기에 좋겠다.
표선항 남쪽 끝자락에 커다란 '불턱'이 있다. 해녀들의 탈의실이자 휴게실이다. 해녀들은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물질하러 갈 때 가져온 지들커(땔감)을 모아 불턱 안에 모닥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기도 했다고 한다. 오래전, 불턱은 해녀들의 탈의실로만 이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 동네 여인들이 매일 모여 대소사를 의논하고 소통했을 테고, 이곳을 통해 어리숙한 동네 남정네들보다 더 큰 권력과 더 단단한 위계가 이루어져 마을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었으리라. 돌담은 쉽게 넘어다 볼 수 없을 만큼 높은데 해녀들은 보이지 않고 입구에는 정낭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올레 4길은 걷는 내내 제주의 남쪽 바다를 안고 간다. 가는 길 어디라도 앉으면 전망 좋은 카페다. 따뜻한 커피가 있으면 금상첨화. 1월의 서귀포는 따스한 햇살과 그 햇살이 부서져 내린 눈부신 바다와 그 바다에 담긴 하늘이 있다.
절반쯤 걸었을까, 토산리 마을 쪽으로 들어가기 전 토산중앙 교차로 주변에 [거리왓]이라는 작은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짬뽕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뚝배기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김치찌개도 맛있지만 밑반찬으로 나온 파무침, 감귤 깍두기, 오이무침, 어묵볶음이 모두 맛있는 손맛 좋은 가게다. ‘왓’은 태국어로 사원이라는 뜻인데, ‘거리왓'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 왓‘은 밭, '거리왓'은 동네 골목에 있는 밭을 말하는 것이라고, 태국어로 ‘왓’이 사원을 뜻한다는 건 이전에 어떤 손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태국 방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짜오쁘라야 강변의 하얀색 탑이 환상적인 왓아룬(새벽사원), 거대한 와불이 유명한 왓포(왕궁 옆에 이쓴 사원, 원래 이름은 왓 포타람)다.
바다를 뒤로 두고 토산리, 신흥리 마을을 걷는 건 다소 심심하다. 막바지 감귤 수확을 하는 농부들이 가끔 보일 뿐 동네 사람도 관광객도 보이지 않고, 집을 지키는 개도 짖지 않는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 큰 감귤 하나를 얻었다. 트럭 타고 가던 영감님이 운전석에 앉아 부르시더니 감귤 하나를 건넨다. ‘하우스 감귤!’ 무심히 건네고는 씨익 웃고 가신다. 웬만한 한라봉 보다 더 크다. 부드러운 신맛에 단맛이 조화롭다.
신흥리포구, 덕돌포구, 태흥2리포구, 태흥 1리 쉼터를 지나 남원포구까지 겨울 제주바다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부지런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