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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제주의 겨울을 담은 보말칼국수

제주 올레길 3-B코스

by 배정철


#온평포구 #표선해수욕장 #신산리마을카페 #성산봄죽칼국수본점 #보말죽 #보말칼국수 #영진호떡


올레 3길은 A와 B 두 코스가 있다. A코스는 온평포구에서 시작해 통오름-독자봉-김영갑 갤러리를 돌아 신풍신천 바다목장으로 나와 표선해수욕장에 이르는 20.9km이고, B코스는 온평포구에서 신산환해장성-신산포구-신산리 마을카페-신풍신천 바다목장으로 이어지는 길로 바다를 따라 걷는 14.6km 짧은 코스다. 어제 많이 걸어서 오늘은 짧은 코스를 걷는다.

시작점으로 가기 전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어제처럼 보온병에는 따뜻한 커피를 채우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베이글, 군고구마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다. 오늘은 어제와 카페의 음악이 다르다. 신나고 활기찬 분위기의 음악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스타벅스가 1971년 창업되었을 때는 가정용 커피를 파는 업체였다. 커피 기계 팔러 다니다 스타벅스를 알게 된 하워드 슐츠가 1985년 스타벅스에 입사해서 다음 해 퇴직하고, 1987년 우여곡절 끝에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된 이후가 지금의 스타벅스 카페 문화의 시작이다. 단순히 커피 음료를 마시는데 그치지 않고 대화, 쉼, 독서, 여행 등 기존의 카페와는 다른 스타벅스만의 분위기가 생겼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사랑한다. 물론 가끔 여럿이 모여 목청 높여 대화하는 '그들이' 싫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시작점인 온평포구에는 용천수 공원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바닷가 포구 쪽에는 용천수가 나오는 곳이 여럿이다. 한라산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고 그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일까? 잘 정비된 공원에는 사람이 없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관광객이 정말 없다는 점이다. 일명 ‘돼지비계’ 사건 이후로 제주도 관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었고, 바가지요금, 비싼 물가, 최근의 계엄과 탄핵, 제주항공 사고 등 악재가 겹친 탓이라고 제주 사람들은 말한다. 정말 사람이 없다.


A코스와 갈라지는 온평리 포구를 지나 만나는 왼편 바닷가에 쌓인 돌담은 다른 곳의 것과 달리 아주 높다. 사람 키보다 높아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환해장성의 흔적이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 약 120km에 쌓은 석성이다. 이곳 온평리 외에도 애월, 곤홀, 별도, 삼양, 북초, 동북, 행원, 한동, 신산 등 여러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환해장성은 고려 원종 11년(1270년)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한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쌓아 항거하다 함락된 이후, 탐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장수 고여림을 보내어 쌓은 것이 시초다.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같은 백성인 삼별초의 진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주일 내내 제주 바다를 보고 걸어서인지 오늘 바다는 다소 무심하다. 바람도 거세지 않아 바다는 잔잔한 호수 마냥 차분하기만 하다. 따뜻한 겨울 햇살, 햇볕 머금은 바람에 오징어가 줄지어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제 몸을 말린다. 돌판에 구운 오징어가 쫄깃쫄깃 맛나다. 길가에 오래된 구멍가게 [막은녀 슈퍼], 겉으로 봐서는 영업을 하는지 문을 닫은 건지 알 수 없다. 동네 골목도 아닌 이런 바닷가 도로변에 있는 가게를 찾은 이가 있기는 할까? ‘막은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주인아주머니의 어릴 적 불리던 별명일까? [막은녀 슈퍼]와 영화 [1987]의 배경이던 목포의 [연희네 슈퍼] 같은 오래된 가게를 보며, 무릎에 구멍 난 바지를 입고 호빵을 들고 서서 활짝 웃으며 [천전상회] 앞에 서 있는 내 어릴 적 사진을 떠올린다. 가게 앞에 내놓은 탁자 아래 숨어서 잠이 드는 바람에 저녁 내내 꼬맹이를 찾는다고 소통이 일었던 이야기, 가게 안에서 여동생의 치통을 달래느라 엄마와 누나가 신문지를 불살라 기름을 짜내던 일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늘 점심 메뉴는 보말죽과 보말칼국수, 신산리 마을카페가 있던 자리에 [성산봄죽칼국수]이 생겼다. 나이 지긋한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인지 주방에도 홀에도 그런 분들이다. 네이버에 후기를 적으면 감귤주스를 준다길래 사진도 찍고 후기를 남겼다.


‘올레 3길 B코스 중간에서 만난 신산리 마을카페가 [성산 봄] 죽, 칼국수 식당이 되었다.

봄을 품은 향긋한 보말 죽과 칼국수 한 그릇으로 제주의 겨울을 담았다. 바다가 보이는 뷰와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


나중에 보니 후기에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성상봄죽칼국수입니다.

고객님~

멋진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캬~

봄을 품은 보말죽이 제주 겨울을 담았다.

너무 따뜻한 글입니다.

고객님의 리뷰에 쓰러집니다.

감사합니다. '

감귤 주스가 아니라도 이런 후기를 남기고 싶은 맛이었다. 달콤 쌉쌀한 보말이 식감 좋은 쌀에 잘 스미어 맛과 향이 일품이다.


기분 좋은 식사 후에는 걸음이 가볍다.

A코스와 만나는 신풍신천 바다목장에는 말이나 소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지는 오후, 고도를 낮춘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표선해수욕장까지 걸었다. 표선해수육장에는 어느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 든 모래사장을 몇 사람이 걷고 있다. 조개라도 찾는 것인지 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는다. 걷는 모습이 왠지 아름답게 느껴진다.


차를 몰아 서귀포 제주올래매일시장에서 장을 봤다. 마른 옥돔(3미, 15000원), 가자미(6미, 20000원), 참돔 (8미, 20000원)를 담은 장바구니가 묵직하다. 시장입구 [영진호떡]에서 어묵도 사 먹었다. 마침 손님이 없어 사장님께 '그제 왔을 때 중국 관광객에게 중국말을 아주 잘하시던데요?' 하고 말을 건넸더니, 어느 날부터 중국인이 많이 오길래 학원에서 여덟 달 동안 중국어를 배우셨다고 겸연쩍어하신다. 더 배우려다가 진도 더 나가니 너무 어렵고 머리도 아파 그만뒀다고, 가게에서 중국인 상대하는 중국어는 할 수 있다고 살짝 자랑이시다. 사진 하나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시며 활짝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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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제주올레매일시장에는 중국어를 잘하는 호떡집 사장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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