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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시린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소리

제주올레 7코스

by 배정철

#제주올레 7코스(여행자센터~월평마을아왜낭목)

#매생이죽 #소낭집낚지덮밥 #천지연폭포 #외돌개


오늘은 올레 7길,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월평마을아왜낭목 쉼터까지 17.6km다.


어제 처음 가 본 서귀포 [제주올레여행자센터]는 올레 여행자들의 쉼터이자 정보 공유지다. 간단한 식사와 음료도 판매하고 있어 오다가다 쉬어가기 좋다. 아침 식사도 된다고 해서 다음날 식사를 예약했다. 가능한 한 여분이 생기지 않도록 조리하기 위해 먼저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오늘 메뉴는 담백하고 고소한 매생이 죽, 삶은 달걀과 감귤 하나. 아침 식사(가격 5,000원)로 훌륭하다. 여기 근무하는 분들은 일을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친절한 말투와 태도로 답하고 대한다. 제주 올레길에 대한 자랑스러움, 이 길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더 많은 이들이 올레 트레일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리라.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오늘도 즐거운 트레킹 시작!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서귀교를 지나면, 서귀포 앞바다로 흘러드는 연외천 주변으로 [갈매생태공원]과 [칠십리 시(詩) 공원]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두 공원의 중간쯤에 천지연폭포가 있다. 칠십리 시공원에는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나 노래 가사가 새겨진 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시(市) 공원이 아니라 시(詩) 공원이다.

공원 아래쪽 덕판배 미술관 주변은 파크골프장이다. 요즘 어디를 가나 대유행인 파크골프가 여기서도 한창이다. 초창기에는 나이 느긋하게 드신 분들이 주로 즐기던 스포츠인데 요즘은 40-50대 층에서도 인기가 많단다. 스크린 파크골프도 생겼다는데,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다. 칠십리 시공원에서 천지연 폭포가 잘 보인다. [천지연 폭포]는 35년 전 대학교 졸업여행 때 보고는 처음 보는 것이다. 지금 이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아내와는 한창 연애 시기였다. 공원에서 폭포까지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22m 높이의 폭포가 아기자기해 보인다.


칠십리 공원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곳은 [삼매봉]이다. 높이 153m의 기생화산으로 3개의 봉우리가 매화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위치에서 어디를 봐야 매화 모양이 보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높지 않은 봉우리인데도 올라가는데 숨이 차다. 삼매봉에서는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매봉 공원을 내려와 해안가로 내려가면 황우지 해변이다. 넓은 언덕이라는 뜻의 [동너븐덕] 왼편에는 황우지선녀탕, 오른편으로는 외돌개가 보이고, 정면 바다로는 범섬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블루펄리조트까지의 경치가 환상적이다. 화산활동의 생긴 크고 작은 바위, 출렁이는 바닷물 사이로 들쑥날쑥 거리는 암초, 파랑 잉크를 타놓은 듯 시린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소리는 이곳이 바로 환상의 섬 제주도라는 걸 알려준다.


돔베낭골에서 속골유원지까지는 사유지로 인해 해안길이 이어지지 못하고 서귀포여자고등학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해안길로 내려온다. 속골유원지를 지나면 수봉로다.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그의 땀과 정성이 묻어 있는 길이다. 길은 걷는 사람의 것이라는데, 이 길은 만든 사람의 것이라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수봉로를 지나면 법환포구다. 법환포구에는 카페와 식당이 여럿 있다. 오늘 점심은 [소낭집] 낚지 덮밥. 연예인들이 다녀갔다고 떠들썩한 목포 낚지 맛집에 비해 가격은 절반인데, 맛은 두 배다.


점심 식사 후에는 걸음이 좀 느려지고, 법환포구에서 강정항까지의 4km는 걷는 재미가 덜하다. 강정마을에는 십수 년 전 해군기지 건설 반대의 목소리가 여전히 ‘해군기지폐쇄’ 깃발에 실려 나부낀다. 넓은 도로, 깔끔한 새 건물, 넓은 잔디 운동장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해군, 기지, 함대, 전쟁, 평화, 구럼비 바위.

강정항을 지나 월평포구 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폐쇄되어 우회한다. 해안을 벗어나 귤밭 사이로 난 길은 역시나 재미가 덜 하다. 앉으면 따뜻해지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남은 커피를 홀짝이다 마지막 힘을 모아 7코스 종착지 월평마을 아왜낭목(아외나무, 아왜나무 숲)에 닿는다. 올레 패스포트에 종착지 스탬프를 찍고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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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은 한 코스를 걷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버스 편이 잘 되어 있다. 배낭을 메고 걷다가 쉴 수 있는 숙소, 카페, 음식점이 많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트레일이다. 운탄고도 1330, 서해랑길, 남파랑길은 그런 면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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