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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Oct 11. 2024

한강, 노벨문학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아내가 어제 든 카레를 강황으로 입힌 잡곡밥에 부어 가면서 바쁘게 먹었다. 빨리 학교 도서관으로 가고 싶었다. 아침을 먹으며  아내와 어제저녁 갑자기 찾아든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우리는 서로 즐겁게 말했다.


이런 좋은 소식이 어디 있을까? 한강의 채식 주의자는 대단했어. 나는 세 번이나 읽었어. 그의 문체는 시야. 그녀는 시인으로 등단했지. 마치 Michael Ondaatje의 The English Patient 글처럼 빛나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아름다워. 그녀의 '소년이 온다'는 슬프고 아팠지. 30센티 자를 자궁 속에 쑤셔대며 고문을 당하는 여학생의 모습은 10년이 넘어도 지워지질 않아. 노벨 위원회의 말처럼, 그녀의 글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있는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지. 그녀의 글은 모든 사람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야.


늘 그렇듯이, 어제저녁 일찍 자리에 누웠다. 숙면을 취해야겠다고 핸드폰도 서재에 옮겨 두었다. 화장실 때문에 일어나지 말자고 물 잔도 침대 선반에서 작은 거실에 옮겼다. 무엇보다 소중한 깊은 잠을 되찾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내가 흥분하며 나를 깨웠다. TV를 틀었다. 이리저리 돌려도 한강 수상 소식이 나오질 않았다. 거짓말 아니냐고 아내에게 되묻기 까지 했다. 잠이 잘 오질 않았다. 한강의 놀라운 소식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배고픔이 몰려들었다. 저녁 거의 안 먹는 내가 늦게 잘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아침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한강 책을 대출하기로 했다. 아내와 7:30에 같이 나가기로 했다. 학교 근처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 접종도 맞기로 했다.




내가 한강을 접한 것은 오래전이다. 집 서재에 가득 찬 책장을 바라보며 난 언제 저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두 딸들이 인디고 생활을 하며 사고 읽었던 책들이 가득했었다. 읽고 싶었지만, 결코 읽지 못하는 나를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내가 죽기 전에 저기 꼽혀 있는 책들은 다 읽어야겠다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때 한강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특이했다. 남자인 줄 알았다. 그의 책을 펼쳤을 때 나는 놀랐다. 간결하고 깊고 즐겁고 슬픈 그의 문장에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부커상 수상자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한국인이 한국말로 쓴 최고의 글을 읽는 듯했다. 번역서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언어의 명료함과 감동. 우리만이 가지는 특수한 감수성 그 위로, 우리가 말하는 언어들이 색을 입히고 감정을 만들어 갔다.


오늘 나는 10년 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었다. 나는 한강의 주인공들이 겪는 큰 공포와 고통을 다시 느꼈다. 동물이 쇳덩이를 들고 사람의 살덩이를 무자비하게 찢어대는 아픔. 그리고 그것과 직면하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 그때 나는 그것을 다시 표현하고 싶어 구석기시대 잔인한 인간 동물들의 싸움을 그려 적어 보기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다 여기 다시 써 본다.


싫다. 광주 우리 역사가 증오스럽다. 80년 오월. 잔혹한 살인이 만든 처절한 절망. 인간이 완전한 동물로 돌아간 그때. 그러나 세상은 그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고 있었다. 그 아픈 기억 속에 지금도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 육체는 다 사그라져 깊은 통증 시달리고, 정신 병들어 트라우마에, 헛것 보며, 미쳐서 지금도 그때처럼 죽어가고 있다. 오월 지나가고 유월이 찾아든 지금. 난 가슴을 쓸어내리는 찬 기운에 떨고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도서관에 도착했다. 3층 제2자료실로 갔다.  한강 소설을 대출했다. 그리고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도 빌렸다. 도서관 직원 선생이 예쁜 가방에 책을 넣어 주셨다. 나는 그분을 좋아한다. 언제나 친절하고 언제나 내게 잘한다. 도서관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학교 식당에서 나를 만났을 때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고 엄지 척을 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순두부 솥밥 집에서 만나, 계산을 내가 했더니 부부가 일어나서 얼마나 감사를 하던지 기억이 새롭다. 한강의 큰 선물을 안고 연구실로 들어왔다.


책을 좋아한다 하면서 한강에게는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많은 소설이 있는데 2권 밖에 읽지 못했다. 가까이에 위대한 문인을 두고도 잘 몰랐다. 부커상, 노벨 문학상 작가들을 열심히 찾아 대고 읽기도 했지만, 정작 내 안에 있는 보석은 알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다시 그녀를 읽는다. 그녀가 주는 귀한 선물들을 읽으며, 노벨문학상을 축하하고 싶다. 큰딸 말대로, 모국어로 읽는 노벨상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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