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것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것
세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 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셀 수 없는 혀와 펜들로 수천 년간 너더너덜 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더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 누덕누덕 기워진, 바싹 마른, 무표정한 심장. 그럴수록 더 힘껏 단어들을 움켜쥐었다. 한순간 손아귀가 헐거워졌다. 무딘 파편들이 발등에 떨어졌다. 팽팽하게 맞물려 돌던 톱니바퀴가 멈췄다. 끈덕지게 마모된 한 자리가 살점처럼, 숟가락으로 퍼낸 두부처럼 움푹 떨어져 나갔다.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든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의 침묵에 공포를 느껴요. 한번 퍼져 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당신이 보이지 않았어요/ 나 자신도 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은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나도 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입술 사이로/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당신은 간절했지요/무섭게 고요했지요/ 어두웠지요/밤이 저문 다음 찾아오는 더 깊은 밤처럼/수압 때문에 모든 생물들의 몸이 납작해진 심해처럼/
한 순간 당신의 검지 손가락이 내 어깨의 살갗 위를 움직이여 썼지요/숲, 숲이라고/난 다음의 말을 기다렸어요/다음의 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 눈을 뜨고 /어둠을 들여다보았어요/어둠 속에 희끗하게 번진 당신의 몸을 보았어요/그때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지요/아주 가까이 누워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빗소리가 멈추지 않았어요/무엇인가가 우리 내부에서 깨어 젔지요/빛도 목소리도 없는 그곳에서/수압을 견디지 못해 산산 조각난 산호들 사이에서/우리 몸은 이제 막 떠오르려 하고 있었지요/그대로 떠오르고 싶지 않아서/당신의 목에 팔을 감았어요/당신의 어깨를 더듬어 입 맞추었어요./내가 더 입 맞출 수 없도록 /당신은 내 얼굴을 껴안으며 작은 소리를 냈지요/처음으로/거품처럼 가냘프게, 둥글게/
나는 숨을 멈췄어요/당신은 계속 숨을 쉬고 있었어요/겨우 당신의 숨소리가 들렸어요/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떠 올랐지요/먼저 수면의 빛에 어렴풋이 닿고/그다음부터는 뭍으로 거세게 쓸려갔어요/
두려웠어요/두렵지 않았어요/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어요/울음을 터트리고 싶지 않았어요/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 전에/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 맞추었지요./이마에/눈썹에/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 맞추는 것 같았어요/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막한 어둠이 고였어요/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 올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