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장대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시원한 기운이 나를 깨웠다. 빗방울 소리가 노래 가락처럼 들린다. 빗물에 번들거리는 아파트 보도를 본다. 안개 머금은 바다를 본다. 그리고 가볍게 흔들거리는 물먹은 나무와 화초를 본다. 마음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비는 세상을 떠 다니는 입자들을 끌어내린다. 나를 어지럽히던 마음속 부유체들도 가라앉았다. 평온하고 조용하다. 자연은 시간을 맞추어 찾아드는 오묘가 있다.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여러 가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매일이 다르다. 그래서 매력 있고 좋다. 그 속에 함께 하는 나는 즐겁다.
아내가 많이 걱정을 한다. 호우 주의보 등굣길 힘들겠다고. 그런데 난 오히려 이런 날씨가 더 좋다. 더 걷고 싶은 날씨다. 샤워하고 어떤 옷을 입을까 잠깐 생각했다. 긴팔 입을까 하다 반팔로 입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큰 우산 들까 하다 평소 들던 우산을 잡았다. 빗방울이 몸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시원한 빗방울이 팔에서 튀어 나간다. 즐거운 자극이다. 신발 근처 바짓가랑이는 벌써 많이 젖었다. 그런데 발걸음은 더 가볍다. 좋은 컨디션이 뿜어내는 힘이 있다. 길쭉하게 생긴 다리로 힘차게 뻗어가며 내딛는 걸음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다원은 자연선택이라 말하지만, 사람의 팔다리 생긴 모양을 보면 기적과도 같다. 하나님 작품들이 지하철 타고 일하러 분주히 가고 있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계단을 올라 옆으로 고개 돌리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운이 좋다. 보통은 기다리기 싫어서 걸어 올라 가는데, 오늘은 때 마침 만났다. 비 내리는 창가를 즐기며 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풋풋한 초록 냄새가 빗방울에 실려 들었다. 조경이 좋아 몇 번이고 사진 찍던 소나무 숲을 지나갔다. 유난히도 짙은 녹색을 느끼며 걸었다. 토닥토닥 우산 위에서 빗방울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기 잠자는 숨소리 인양 소곤 소곤 대지위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