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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30. 2022

우울해도 될까요

우울감 커밍아웃

끝끝내 찾아간 402호.

직원들을 위한 직장 내 심리상담실이다.

나보다 족히 10살은 어려 보이는 심리상담사가 묻는다.


“여기 오신 가장 큰 이유가 뭐예요?"


한참 생각 끝에 나온 대답은 스스로도 의외였다.


“아이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그 순간에도 주책없이 코가 빨개졌다.

지나치게 불쑥불쑥 눈물이 나는 요즘이다.

도대체 내 마음에 어떤 어려움이 생긴 걸까.






코로나가 모질게 들이닥친 2020년 봄날.

3학년이던 아이의 학교와 학원이 모두 멈추고, 지방에 있는 아빠와 출근하는 엄마 덕에 아이는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켰다. 아파트 놀이터에 꼬맹이 하나,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던 시기. 시댁은 멀었고 친정엄마는 야속하게도 늘 엄마일이 더 바쁜 사람이었다. 딸아이는 자기만 계속 자가격리를 하는 것 같다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아침 8시부터 최소 저녁 7시까지 혼자 밥 먹고, 혼자 원격수업하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놀고, 혼자 말하고. 참 쓸쓸했겠다, 많이 심심했겠다, 조금 외로웠겠다 싶은 생각이 지금도 든다.


그즈음이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도, 사무실에서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다가도,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직장 동료들과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하릴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도 안 먹고 출근하는 내가 점심도 거른 채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우울해서 무기력한 걸까 무기력해지니 우울한 걸까,

상황이 문제일까 내 마음이 문제일까.

밤마다 혼술을 마시며 무한반복 맴도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겼다.






402호 사무실은 유난히 화분이 많았고, 밝은 조명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7층이라 계단으로 후다닥 뛰어 내려가면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도, 그 문을 두드리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누구 아는 직원이라도 마주칠까 문 앞에선 또 얼마나 두리번거렸던지.


심리상담사와 서먹하게 마주 앉았다. 어색함을 감추려 직원들은 많이 오는지 먼저 물으니 직장 내 스트레스, 부부관계, 아이 문제 등으로 적잖이 온단다. 다행이다. 나만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별난 사람이 아니라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대체로 상담사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중간엔 타로 점치듯 그림카드도 골라 가며 이야기 나누었다. 역시나 그는 프로답게 재촉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더 객관적인 마음 상태를 알고 싶어 심리검사(문장완성 검사 등 몇 백 문항에 해당하는 문제지를 풀어야 함)를 요청해 진행했고,  다음 방문 때 알게 된 검사결과는 내 우울감이 차곡차곡 쌓여 꽤 깊어졌다는 사실.

상담사는 내게 정신과 방문도 권할 수 있지만 아마 성격상 병원에 가지 못할 거라며 일주일에 한 번씩 딱 열 번만 자기를 만나 이야기 나누잔다.







그의 예상대로 난 내 마음보다는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과를 찾지 못했고, 심리상담도 열 번을 채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뿌옇게만 보이던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니 한결 가볍고 홀가분했다. 남편에게도 우울감을 커밍아웃하며 “나 약간 우울해서 그래. 나한테 시간을 좀 주고 도와줘.”라고 강제적인 배려를 부탁했고, 스스로도 얇아진 마음을 단단히 하려 애썼다. 마음의 유효기간은 6개월이라 했다. 감정이란 시시 때때로 변하는 것이고 6개월 후엔 또 달라질 수 있다고. 틈나는 대로 안 하던 명상과 산책을 했고, 거르던 밥을 꼭꼭 챙겨 먹었다. 끝내 술은 끊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럭저럭 편안해지고 있었다.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에서


이런 우중충한 나의 고백이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일일까 염려하지 않는다.

언제 또 깊은 우울감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혹시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연말 내 마음이 우울감으로 가득 차오른다면 체면 차리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자.

"도와줘."라고 용기 내보자.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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