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나요? -ep.2
누구나 한 번쯤 살다 보면 하게 되는 생각일 겁니다.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그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 그런 생각들이 문득 솟아오릅니다. 그게 한두 번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텐데, 그런 식으로 시작된 생각은 대부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멈춰 서게 되고, 갑자기 모든 일이 막막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물음표만 잔뜩 떠다니는 일상 속에서 헤매기 시작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의 저는 늘 그런 의문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상상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는 현실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좌절감과 행복하지 않다는 기분을 느낄 때마다 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되짚어 봤습니다. 남들도 한 번쯤은 다 겪는 일이라 생각하며 별일 아니란 듯이 넘기고 싶었지만, 한 번 시작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되었고,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생각합니다.
‘남들도 한 번쯤 다 겪는 일’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일반화는 아니었나 봅니다. 지난 봄날 저녁, 지난날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진행했던 인생 목표를 찾는 소셜링에 20대 중반의 여성분이 계셨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참여신청을 하셨는지 여쭤봤더니, 큰 고민이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유치원에서 특수반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로 일하고 계셨어요. 멋진 일을 하고 계셨던 그분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란 생각이 계속 떠올랐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노력 중이셨어요. 그러다 다른 일을 알아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모임에 참여하신 거였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가이드 북의 순서에 따라 질문에 하나씩 답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다행히도 그분은 자신만의 답을 찾으셨습니다. 이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이지만 ‘한계’라는 생각에 부딪혀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 일 외에 다른 아이디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만 아니라면 괜찮을 거란 생각이셨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실천하고 싶은 가치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면서 다시 그 일에 집중을 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지금 맞닥뜨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면서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참으로 멋진 분이시지요?
제가 수학을 그만두고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고 결정하던 시기에, 그분처럼 용기를 내어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꿈을 그리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면 현재의 저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란 질문은, 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란 질문은 나의 상황이 만족스럽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생각과는 다를 때, 무언가 힘에 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란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란 대답이 나오겠지요.
앞에서도 이야기드렸지만,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라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벽을 더 뚜렷하게 체감하는 생각들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방황의 길로 인도하겠지요.
얼마 전 읽은 황농문 교수님의 <슬로씽킹>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받은 연구 주제에 그리 흥미가 없어서 억지로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연구 주제에 대해 생각하니 재미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슬로씽킹> 황농문, 49쪽
황농문 교수님은 <몰입>으로 더 유명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설명하시는 ‘몰입’의 상태를 체험하고 변화를 겪으신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슬로씽킹>이란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1초도 놓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하여 생각하는 것이 슬로씽킹의 포인트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 일주일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 동안 한 가지만 생각하며 답을 찾으려 하다 보면 고도의 몰입상태가 되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책의 주된 내용이고 많은 분들이 체험하신 듯했습니다.
우리의 뇌에는 ‘생각의 길’이라고 일컫는 시냅스가 존재합니다. 자세하게는 뇌를 구성하는 세포인 뉴런들이 연결되는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냅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활성화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더 많이 하면 됩니다. 유일하면서도 단순한 방법입니다. 택시기사 분들의 특정한 기억을 담당하는 뇌 세포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두껍고 발달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운전을 하며 길을 외우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런 것처럼 시냅스는 후천적으로 발달되기도, 퇴화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뇌의 가소성’이라 이야기합니다.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슬로싱킹을 하며 한 가지에만 매일같이 집중하다 보면 뇌는 그것을 생존에 중요한 것이라 인식하고 더 많은 뇌세포를 만들게 됩니다. 시냅스가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그 일을 ‘의미 있는 일’이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미가 생긴 그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의도적인 몰입’이 필요하다고 책에 쓰여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재미없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계속 집중하다 보면 재미가 생기고 적성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일에 빠져 지내며 행복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란 고민에 빠져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살고 계시는 분들께 '슬로씽킹'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날의 제가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라며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고 매일같이 노력했다면 저는 지금쯤 더 멋진 강사가 되어있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아마 벌써 그토록 원하는 ‘이름 날리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저희 엄마가 저에게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저보다 책은 읽지 않지만 30년 더 먼저 삶을 겪으며 쌓아온 지혜가 가득한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라고 강요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기에 덕분에 제가 자유롭게 살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지만, 항상 ‘뭐든 열심히 해’라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하면 뭐든 남는 것은 있다’고 말입니다. 언제 그 말을 했는지, 한 적이 있기나 한지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 해 한 해를 보낼수록 참 와닿는 말입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온다면, ‘뭐든 남는 게 있겠지’란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잡고 집중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란 독기로 더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나의 길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보다 ‘내 길은 내가 만든다!’란 생각으로 ‘적성이 될 때까지 한다’는 마인드로 덤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건데, 이렇게 쉬운 척 이야기해 봅니다.)
저는 거듭된 고민 끝에 수학강사의 일을 때려치운 후 서울로 올라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월세와 생활비를 벌려는 목적으로 대형 학원의 수학 강사 밑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도 시작했습니다. 수학 강사를 내려놓고 수학 강사 옆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분들을 관찰하며 몇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단위의 돈을 벌며 강사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분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들은 내 수준에서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단 생각을요. '내 길이 맞을까? 내 적성에 맞는 걸까? 나는 자질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어둠에 잠겨있는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괜찮은 수업을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지 노력하시는 분들 뿐이었고, '당연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본인의 자리에서 열심이셨습니다.
그분들 만큼 열심히 살아본 적도 없는 저 자신이 그런 고민을 하다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일을 때려치운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다시 강의가 하고 싶어 졌고, 저는 다시 수학 강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고민 많은 청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뒤를 보기보다는 벽 너머의 세상을 꿈꿔보라고 말입니다. 흔들릴 수는 있지만, 무너지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도망치지 말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들더라도 계속 달려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뭐든 남는 게 있다고, 성취하는 게 있다고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막막하고 두렵다는 기분이 들 때, 감정이 결과를 만들지 못하도록 무엇이든 해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