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모임이다. 여섯 명이 같이 모여 오랜만에 외박 도전, 산정호수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열일곱 소녀 시절부터 오십 중반까지 사십 년 가까이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을 함께 걸으며 곁을 지켜 온 친구들이다. 이제는 서로 머리를 들춰보며 흰머리가 얼마나 많아졌나 세어보기도 하고 건강검진에서 찾아낸 이런저런 질병을 어떻게 치료하고 있는지 조곤조곤 늘어놓기도 한다.
아담한 펜션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 하니, 평소 음식에 남다른 연구정신이 투철한 A가 엄청난 규모의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풀어 놓는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등에 계란말이, 멸치볶음 등 밑반찬에다 마늘종 장아찌, 가시오갈피 장아찌류는 덤이고 홍합탕 거리에 수육 삶을 들통까지 내어놓고 아침에 먹을 사골국물까지 냉장고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우와, 우와,
입으로는 '우와' 손과 발은 바쁘게 씻고 썰고 끓이고 정리하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나선다.
"고생 너무 많이 했다, 잘 먹을게. 다음부턴 그냥 와라 가볍게."
"아냐. 내가 좋아서 하는걸. 너희들 맛있게 먹으면 행복하다야."
회사 일이 바쁜 B가 저녁때쯤 사들고 온 홍어무침까지 더해서 즐거운 식사를 하는데,
"야, 나 왜 이렇게 행복하냐. 친구들하고 이렇게 음식 나눠 먹고 얘기하고 그러는 게 너무 행복해."
C가 싱글싱글한 웃는 눈으로 말하니 맞다 맞아,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도 못했지. 왁자지껄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정호수 둘레길 산책에 나섰다.
산정호수는 심상치 않은 기세가 우뚝우뚝 솟은 기운 왕성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산중의 우물과 같은 호수라는 뜻으로 산정호수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눈 쌓인 진경산수화 풍경 같은 산들이 그대로 호수에 맑게 담겨 있다. 한때 영화를 누리다가 왕건에게 쫓겨 숨어지내던 궁예가 이 산에서 크게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명성산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한다.
밤이 되어 이불을 펴고 모두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커튼이 어스름 밝아질 때쯤 고요함을 타고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엄마, 응. 나 여기 친구들하고 있어."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나직이 얼마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엄마와 친구 D가 통화를 한다.
"응, 엄마. 알았어. 내가 할게. 이따가 오빠가 엄마 뵈러 갈 거야. 식사 잘하고 있어, 엄마 알았지?"
D의 엄마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집에서 주중 주말 나눠 형제들이 돌보다가 증상이 심해져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 눈물을 펑펑 쏟았던 D. 그 애달픈 엄마가 비가 샌다며 물 받아야 한다고 새벽같이 딸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시는 엄마의 헛된 말씀에도 D는 아기 돌보는 엄마 목소리로 자상하고 부드럽게 하나하나 대답하고 있다.
눈을 감고 등을 돌려 그 살뜰한 대화를 들으며 엄마가 멀쩡한 정신일 때도 D처럼 엄마와 대화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남에게 친절했던 반만이라도 엄마에게 자상하고 부드럽게 대했더라면 돌아가신 지금, 그나마 후회가 덜할 텐데.
아침 일찍 다시 한번 산정호수 둘레길을 걷는다. 하얀 새싹 같은 물안개가 표롱표롱 이리저리 날아오른다.
친구란 무엇인가. 자상하게 대화하는 예절을 가르쳐 준 친구. 부지런을 수고로 여기지 않고 아낌없이 베푸는 친구. 내 주장을 밀어 넣지 않고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는 차분한 태도를 보여 준 친구. 소외되는 친구 없도록 매사 배려하는 친구. 모두의 이익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친구.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렇게 빛나는 장점만 배워서 나를 가다듬기에도 남은 생이 한참 부족하다.
훗날, 든든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에 둘러싸여 성숙하게 익은 내 모습이 저 맑은 호수에 비치기를.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펜션 앞마당에 다시 모여 새로 산 중고차 구경을 하고 주문한 자동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어깨동무하고 폴짝폴짝 뛰며 으쌰 으쌰 파이팅을 외친 후 다들 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