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는 그 말
언제나 내 선택에는 변명이 스며들어 있었어요.
어쩔 수 없지, 방법은 이것뿐이야, 같은 말들이 없으면 제 선택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었어요. 어떤 모양으로든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선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잡아먹었던 거예요.
생산적인 사람, 어쩌면 그게 제 꿈이었을지도 몰라요.
사회가 정한 역할이나 할 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이에 걸맞은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나와 우리를 너무나 건조하고 딱딱한 사람으로 만들어요.
어느 나이엔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나이 전까지는 적어도 취업을 하고 그 뒤로는 결혼을 하고. 이것들이 아니더라도 삶의 모양은 다양하고 방향도 셀 수 없이 많을 텐데 왜 우리는 나의 취향을 죽이고 획일화되고 고착화된 선택지만을 바라보는 걸까요.
아마도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겠죠. 저도 그랬으므로 그 느낌이 얼마나 서늘하고 외로운지 알고 있어요. 지금도 느껴지는 걸요. 이 때문에 나는 내 취향과 의지와 행복할지도 모르는 선택지를 밀어 두고 사회가 반은 정해놓은 선택지에 발을 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쩔 수 없지, 이게 최선일 거야.'라는 다소 슬픈 결과물이 탄생했을 거예요.
저는 여러 개의 변명이 쌓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어릴 땐 공부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취미를 관뒀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휩쓸려 가듯 어떤 무리에 매여버렸어요. 이제 다른 일들이 나를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포기하는 사람으로 만들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내게 사과를 해야 해요. 나는 나의 욕망을 꺾고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모든 일에 변명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내 인생을 모두 변명처럼 만들지 말아야 해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삶을 뚫고 나온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고 하찮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한 일들이 내 취향과 욕망을 괴롭힐 때 취향의 작은 부분을 놓지 않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