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47 - 불완전한 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며

by 생강

47.


쓰레기를 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장바구니와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재사용 화장 솜, 손수건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제품은 최대한 소비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노력은 아주 작고 지구는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나아지고 있다. 지구별을 살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나는 소수에서 다수가 되는 행렬 어딘가에 서 있다.


어느 날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동물과 환경을 생각했고 채식을 알았다. 채식에 대해 공부하면서 동시에 제로 웨이스트도 나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무튼 나는 지구에서 사는 동안 최소한의 쓰레기만 남기고 싶어.

이미 이십 년 넘게 아무렇게나 플라스틱을 썼지만 이제라도 의식하면서 살고 싶어.

완벽하기보다 작더라도 실천하는 사람이고 싶어.


요즘은 완벽이란 말이 어색하다. 완벽은 없고 실천만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여전히 해양 동물을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고 매번 복용하던 연질 캡슐 진통제에 젤라틴이 들어간다는 사실도 몇 시간 전에 알았으며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 빵을 아침으로 먹는다. 갑자기 얻어 마신 커피 때문에 플라스틱 컵을 손에 쥔다. 주문할 때 빨대를 급구 사양해도 이미 음료에 꽂혀서 나온 경우도 있었고 마트에서 소비하는 채소 중엔 여러 물품이 플라스틱 포장에 쌓여있다. 나는 여전히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후회하고 최대한 깨끗한 상태로 분리수거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다만 후회 뒤에 밀려오는 반성을 원동력으로 다음 기회에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있는 것을 최대한 사용한 뒤 쓰레기가 덜 나오는 물품을 소비하자.


그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니. 너 혼자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불편하게 꼭 그래야 해? 나의 작은 실천을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불쾌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사람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이 사건에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고, '나 혼자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반대로 여러 사람이 모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며,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생활이 불편하다'는 건 그만큼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져 소중한 지구를 보지 못하는 개인의 상태를 반증했다. 자, 이제 어떤 말로 나를 판단할 것인가? 말할수록 드러나는 건 본인의 상태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본인의 일상을 찍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용기를 들고 식당에 찾아가 오롯이 음식만 가져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수의 뜻이 다수의 뜻이 되어가는 현장에 서 있음에 영광스럽다. 작년 여름, 집에 있던 투명한 용기를 들고 빵집에서 마들렌 네 개를 포장해왔다. 사장님은 아주 당황한 얼굴로 다만 태연한 손길로 마들렌을 용기에 담아주셨다. 유명한 빵집이었는지 가게 바깥으로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중에 나 혼자만 개별 포장과 비닐봉지를 거부했다. 솔직히, 용기를 내미는 나를 쳐다보던 뒷줄의 손님 무리와 사장님의 표정을 보고 꽤나 무안했다. 그러나 네 개의 레몬 마들렌이 용기 안에 꼭 맞아서 쾌감 넘치게 포장되었을 때 나는 앞선 무안함과 약간의 번거로움이 모두 녹아 사라졌다. 마들렌을 하나씩 개별 포장하고 그것을 큰 포장지에 모아 감싸고 마지막으로 가게의 로고가 박힌 비닐봉지에 넣는 방식으로 빵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레몬 마들렌 네 개뿐, 포장지와 비닐봉지가 아니었으므로.


그 뒤로 나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텀블러와 용기를 가져갔을 때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가게들도 늘었다. 좋은 현상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배달 음식도 시켜 먹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 채식을 하면서 배달 음식을 중단한 것도 있지만, 음식과 같이 오는 플라스틱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먹고 싶으면 최대한 매장을 방문하는 쪽으로 살고 있다. 가끔씩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집마다 내놓은 플라스틱을 보며 온 동네가 쓰레기로 뒤덮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중에 단연 압도적인 것은 플라스틱 배달 용기였다. 코로나 시국에 어쩔 수 없이 늘어가는 배달 주문이지만, 나라도 어떻게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 혼자 하다 보면 누군가 나를 보고 비슷하게 실천하다가 또 다른 이가 누군가를 보고 비슷하게, 작게나마 실천할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그랬으므로.


나는 조용하게 사는 것이 꿈인데 이제 그건 틀린 것 같다. 여전히 소심하고 걱정도 많지만 내가 실천하는 것을 찔끔찔끔 세상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번 주에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라는 책을 사고 대나무 칫솔을 구성품으로 받았다. 나는 여전히 플라스틱 칫솔을 쓰고 있지만 칫솔모가 다 벌어지고 나면 대나무 칫솔을 써 볼 계획이다. 동시에 고체 치약이나 가루로 만든 치약을 검색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치실이 동나면 성수동 더 피커에 들려 생분해 천연 치실과 리필을 살 것이다. 그 날을 아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연질 캡슐 형태의 약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개인 sns에 올렸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내일은 근처 카페로 가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300원을 할인받을 것이다. 개운하게 커피를 마시고 아침엔 두부면 파스타와 월남쌈을 먹어야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완벽하지 않다. 다만 실천할 뿐이다. 나는 나의 실천이 좋다. 해내는 일이 뿌듯하다. 이런 나를 보고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의 생활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음을 미약하게나마 깨닫는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내미는 나, 빵집에서 용기를 내미는 나, 제로 웨이스트 샵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나, 대나무 칫솔을 획득했다고 자랑하는 나,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 있지 않은 약을 찾아 복용하는 나, 빈티지 옷을 사 입는 나. 나는 작지만 나의 실천은 작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생활인데, 지구와 동물을 아끼려고 하는 일인데, 도리어 내가 벅차고 뿌듯한 삶을 누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일인가.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어느 누구도 더럽고 아픈 지구에 살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 대로 살기로 했다. 쓰레기를 덜 만들고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아님 말기로 했다. 아마 몇십 년 된 빈티지 가방에 장바구니와 낡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아담한 채식주의자 할머니가 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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