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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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이 좋다. 물건도 익숙한 것이 좋고 장소도 익숙한 것이 좋다. 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났고 여전히 이곳에 산다. 이곳의 언어가 익숙하고 타지의 낯선 공기가 어색하다. 그런데 한 번 방문한 곳은 내게 익숙한 곳이 된다. 이상하지,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 한 번 가 본 곳이 되고 결국 익숙한 곳이 된다는 게. 이런 방식으로 영역을 넓힌다. 소극적이지만 당차게.
이제껏 이사는 단 한 번이었다. 그마저도 같은 동네의 같은 골목, 나갈 집과 들어갈 집의 거리는 도보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가까웠음에도 나는 아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듯했다. 태어난 뒤로 지금껏 살아온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고, 이사 간 첫날 밤에는 미약하게 숨이 조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한 것 치고는 지금의 집을 좋아한다. 내 방도 좋고 방을 스치는 햇살도 좋고 드문드문 보이는 바깥의 나무들도 좋다. 낯선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물건을 두고, 책상을 정리하고, 액자를 걸고, 엽서를 붙이고,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두고 천천히 방을 둘러보면 꽤나 예쁜 방이 눈에 들어온다.
내게 멋지고 예쁜 것은 익숙한 것이다. 온전히 마음을 열고 구겨진 마음을 쫙 필 수 있는 곳. 그래서 내 방은 내게 가장 내밀한 공간이고, 그다음은 동네의 공원과 자주 가는 골목들과 십 년 넘게 가는 카페다. 세상 곳곳에 내가 쉴 수 있는 익숙함을 심는다. 집에 가는 길에 지치면 쉴 수 있도록, 길목에 하나씩 둔 꽃처럼 쉼터를 만든다.
사람도 익숙한 사람이 좋다. 특히 새로운 사람은 미지의 별을 만나는 기분이다. 내 영역에 낯선 이가 등장했을 때 나는 마음의 문을 여러 겹 두고 하나씩 차례로 닫는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 순간은, 나도 잘 모른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내밀한 영역까지 들어오기도 하고,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저 먼 곳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어쨌든 페스츄리 같은 마음의 겹이 하나씩 무너지는 순간은 대체로 없다. 얇지만 견고한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만 나를 보이는 아주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통계적으로 5년 이상 알아온 사람들에게 마음을 연다. 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이해를 바라지 않아서 상관없다.
나를 오래 안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론 딱 한 번 뿐이었지만, 나를 깊숙이 아는 사람과 내가 보여준 모습을 통해 나를 파악한 사람 그리고 내가 보여준 모습만 아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겐 나를 서슴없이 드러낸다. 그마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잦은 대화 속에서 나를 드러낼 때면 괜스레 민망한데 이제는 나를 드러내도 날 떠나지 않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기쁘다. 익숙함의 끝을 영원히 달리는 관계. 영원은 없지만 영원을 믿고 싶게 한다.
익숙한 것이 좋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싫다가, 익숙해지면 좋다. 아무래도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뭐 어때, 나는 내 영역을 넓히는 방식을 경멸하지만 사랑하는 걸. 겁이 많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생긴 방식인 것을. 새로운 집도, 새로운 사람도 결국 내 집과 내 사람이 되는 과정은 느리지만 정확하다.
차곡차곡 쌓은 마음을 풀어헤치면 새로움에 대한 애정이 폭포처럼 쏟아질 것 같다. 겁과 다른 폴더에 담긴 열망의 자료가 우수수 떨어지면 나는 그것을 꼭 붙잡고 앞으로 나가야지. 살며시 풍기는 애정의 향기를 흩뿌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