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소리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by 김새옹



나무 한그루가 베어지고 벌거벗은 죽음의 상처가 햇빛 속에 드러나면, 묘비가 되어버린 그루터기에서 나무의 역사 전체를 읽을 수 있다. 나이테와 아문 상처에는 모든 싸움, 고통, 질병, 행운, 번영 등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근근이 넘어간 해와 넉넉한 해, 견뎌낸 공격, 이겨낸 폭풍우들이 쓰여 있다.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목재는 좁다란 나이테를 가진 나무라는 사실을, 가장 파괴할 수 없고 가장 강하며 모범적인 나무의 몸통은 산 위 높은 곳, 늘 위험이 계속되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사실을 농부네 소년도 안다. 9


나이테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이의 형태라는 말과 발음이 유사하다.


나무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내 모든 걸 포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존재가 나무라는 것이 중요하다. 왜 나무에게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출발할 때는 너무 귀찮지만 가면 언제나 좋았다.


부모님과 얘기를 하다가도 혼자 슬쩍 앞서나가곤 한다. 인간이 내지 못하는 소리가 그리워서다. 새가 지저귀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고, 나뭇잎들이 나를 버티는 소리들만이 존재한다. 이어폰에 갇혀있던 귀를 열어 보인다. 뻘쭘하지만 소리도 질러보고. 벤치 위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모든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순간이 좋다.


높다란 나무들은 그만큼의 높다란 시간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결과물이 나를 어루만진다.


무언의 위로. 무언의 위안.

존재는 그렇게 의미를 갖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