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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Jun 07. 2023

막 써내려가기?

막 쓰기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시간 2

오늘님, 오늘님! 어젯밤엔 평안하셨나요?

설마... 저와 함께 글쓰기 시작한 걸 후회하시는 건 아니겠죠?


예전에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치유적 글쓰기' 강의 첫날이 끝나기 무섭게 부담감이 밀려들었다고요. 뭘 자꾸 쓰라고 하니까요.

그러게요, 뭘 자꾸 쓰라고 하네요. 그런데 어쩌죠? 직접 쓰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있는 길이 없으니요... 치유와 위로가 목적이든 글을 잘 쓰는 게 목적이든 아니면 출간작가가 되고 싶든 일단은 단 한 문장이라도 직접 써야 하니까요.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준엄한 이치를 우린 잘 알고 있잖아요.


행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기에, 울트라 천재인 괴테님의 문장을 하나 빌려 쓰렵니다. 60년에 걸쳐 쓴 희곡 [파우스트] 비극 1부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이 빈약한 기억력으로 꽤 오랜 세월을 간직해 온 문장이랍니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기독교 경전 중 [요한복음]의 시작 구절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를 파우스트가 독일어로 번역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파우스트는 '말씀' 대신에 '뜻', '힘' 다 넣어보지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결국 '행동'이란 단어를 선택하고서야 '기쁜 마음으로 기록한다'라고 나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무릎을 탁 쳤다는 얘기죠.

언어, 뜻, 힘 모두 중요하지만 그걸 유의미하게 해주는 건 바로 '행동'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1000% 동의합니다. 그 어떤 사랑의 말도 실제 행위로 옮기지 않으면 공허한 지껄임에 불과한 걸, 이미 숱하게 경험했으니까요. 아무튼, 오늘도 우린 글을 막 써보는 겁니다, 출발!


시작하는 단어는 '어젯밤에'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을 그대로 적어 봅니다.  떠오르는 어떤 장면이 있으면 그것 그대로, 어떤 존재가 있으면 또 그대로, 그냥 별 생각이 안 들면 '별일 없었나 보다, 별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라고 그대로 써내려가면 됩니다. 


'잘 써야지', '문법이 이게 맞나?', '이런 걸 써도 되나?'

따위 생각들은 단 한 줌도 잡지 마시고요. 

핸드폰의 타이머나 스톱워치 기능을 활용해서 5분~10분 사이로 시간을 정해놓고 쓰시길 바라고요.

와우, 멋지십니다. 무려 9분이나 계속 펜을 붙잡고 계셨네요.

네? 자꾸 글이 막혀서 펜을 붙잡기만 했다고요? 

정상이에요, 자연스러워요. 그럼요, 이 생각 저 생각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걸요.


막혀서 멈췄다가 다시 쓰는 게 아니라 아예 줄을 북북 긋고 다시 쓰는 분도 있답니다, 이렇게요.

 


어젯밤에 머리가 아팠다. 큰 애가.. 큰 애 때문에 속이 뒤집혔다. 그렇게 지랄을 해서 대학원에 가더니 이젠 또 그만둔다고? 내참, 어이가 없어서. 속은 내가 터지겠고만 술은 왜 지가 마셔? 마셔도 작작 마셔야지, 대체 누굴 닮은 거야? 마셨다 하면 꼭지가 돌 때까지 마시고 인사불성이 돼서 와? 나쁜 기집애, 저걸 딸이라고


어젯밤에 딸애가 늦게 왔다. 자정이 다 돼서야 왔는데 술에 취했다. 아주 많이. 고민이 많은가. 그래도 하필이면 술 취해 오는지 아빨 닮은 건 뭐야? 적당히 좀

어젯밤에 딸애가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무척 힘들어했다. 얼마나 고민이 많으면 저럴까..."      



어떤가요? 보시면... 보이시죠?

위에는 보기 편하게 밑줄로 제가 바꿔서 옮겼는데, 본래는 글자들 가운데에 쭈욱 줄을 그어 버린 문장들이랍니다.   

'어? 엄마가 딸 흉이나 보고 이러면 안 될 텐데? 사람들이 내 딸을 나쁜 아이로 생각할 텐데? 남편 얘기까지 들먹이면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글 쓰신 분은 곧바로 자체 편집에 들어갔던 겁니다. 감정이 순화된 듯한 방향으로 새로 쓰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뭐가 걸렸는지 멈추고 또 새로 씁니다. 화나 짜증 등의 감정은 아예 빠지고요. 대신에 마음씨 넓으신 어머니만 남네요.


처음엔 딸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펴주고 싶었죠. 남편의 못된 점을 빼닮아서 더 화가 났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속엣말을 끄집어냈더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툭 올라와버렸네요. '긍정과 감사'에 대한 강박일 수도 있고요.


지금 우리는 '막 쓰기' 연습 중입니다.  

내 안에서 나오려는 것들을 편집하지 않고 막 써재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요. 그 힘이 외부에서 선물처럼 주어지진 않으니, 오늘님이 하루하루 연습하시는 중에 스르르 힘이 생겨날 겁니다. 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십시다!


그럼, 위 예시글을 '막 쓰기'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젯밤에 머리가 아팠다. 큰 애가.. 큰 애 때문에 속이 뒤집혔다. 그렇게 지랄을 해서 대학원에 가더니 이젠 또 그만둔다고? 내참, 어이가 없어서. 속은 내가 터지겠고만 술은 왜 지가 마셔? 마셔도 작작 마셔야지, 대체 누굴 닮은 거야? 마셨다 하면 꼭지가 돌 때까지 마시고 인사불성이 돼서 와? 나쁜 기집애, 저걸 딸이라고.

가만, 엄마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딸을 흉보고 이렇게 나쁜 아이로 쓰면 사람들이 우리 딸을 뭐라 생각하겠어? 남편 얘기까지 들먹이면서? 아니, 남편 얘기 좀 하면 어때? 욕먹어도 싸다구. 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개고생.. 아니 나이를 먹으면 좀 변해야 하는 거 아냐? 저 인간은 대체"


네, 제가 그분의 생각을 대신해서 막 써보았습니다. 두 가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1. 글을 쓰는데 어떤 생각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릴 때! 그 생각 자체를 글로 그대로 옮깁니다. 막 쓰기를 멈추지 말고요 계속!

2. 그러다 보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더 잘 나오게 되거든요.

윗글에서처럼요. 딸 얘기로 시작하지만 실은 남편한테 너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던 거죠.


그렇다면, 앞서 쓰신 '어젯밤에'로 시작한 글을 다시 써볼까요? 

자체검열 하지 마시고요, 잘 쓰려고 애쓰지도 말고요, 첫 생각을 밀어붙여서 쭉쭉!

네, 거기까지요. 

이젠 쓰신 글을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다 읽고 나니... 어떠세요? 시방 느낌은요?


제게 글쓰기 안내자가 되어주신 나탈리 골드버그 님의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속 문장 하나로 두 번째 만남을 마치려 합니다.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아가라."


내일도 우린 글 쓰러 만납니다.

오늘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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