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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Jun 08. 2023

시방? 시방 느낌?

막 쓰기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시간 3

어서, 어서 오세요, 오늘님!

팔다리를 꾹꾹 눌러가며 기다렸답니다.

뼈마디 곳곳이 욱신거리는 게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라서요.

지금이 봄날 저녁인지 겨울날 아침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입니다. 덕분에, 가본 적도 없는 영국땅 어느 시골, 언덕과 들판, 광야... 같은 이미지들이 막 떠오르네요.


어?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은 저 풍경 속에서 누군가 등장하는데요? 흐트러진 백발로 광야를 헤매는데요?... 리어왕?

리어왕이군요! 진짜배기 셋째 딸의 진심은 알아보지 못하고, 거짓되고 아첨하는 첫째와 둘째 딸을 선택하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더니, 결국 두 딸에게 팽 당하고 광야로 내쫓겼네요. 실성한 노인네가 돼버린 거죠.

이미지는 네이버 블로그 '키르케고르'에서 퍼왔어요. 고맙습니다.

리어왕이 딸들에게 버림받는 과정 중, 셰익스피어의 대리인 같은 광대가 이렇게 말합니다.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마라"


바로 제 귓전에서 울리는 듯합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요, 쾅쾅 북소리처럼...

앗? 제가 하늘빛에 과하게 몰입한 모양입니다. 잠시 저는 멈출게요.

오늘님 차례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오늘님은 날씨를 어떻게 만나시나요? 창밖 풍경을 보실 수 있으면 잠시만 바라보실까요?


바라보니 어떠신가요?

오늘님의 시방 느낌이 어떠한가요?


긍정이냐 부정이냐 그런 판단은 내려놓고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까요.  오늘님이 창밖 하늘이나 햇살, 바람 혹은 도심풍광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을 한, 두 단어로 표현해 보세요.

예를 들어,

  쓸쓸하다 / 답답하고 불안하다 / 무섭다 / 시원하고 가볍다 / 멍하다 / 그냥 그렇다.


네, 어떤 느낌이든 그대로 적고 , 그 뒤에 따라오는 생각들을 이어서 써 내려가세요.    

그런데 오늘님이 살짝 헷갈리실 수도 있겠네요.

어떠신가요? 사실이나 생각 이후에 따라오는 느낌. 사실과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기가 수월하세요?

저는 처음에 무척 어려웠었답니다. 내 느낌을 말하는 때에 자꾸 생각만 늘어놓았었거든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서 잠시 연습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아래 두 문장을 봐주세요.


1) 비가 온다. 참 좋다!


2) 비가 온다. 꼭 내가 우산을 안 가져온 날엔 비가 온다. 어유, 짜증 나.


1번은 '비가 온다'는 사실(사건, 팩트)에서 곧바로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좋다!'라고요.


2은 '비가 온다'는 사실(사건, 팩트)을 접하고는 '꼭 내가 우산을 안 가져오면 비가 온다'라고 하는 생각이 일어났지요. 그건 사실이 아니죠. 우산 안 가져온 날에 바람만 불었을 수도 있고, 우산 안 가져왔는데 비도 안 온 날도 있겠죠.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2번은 스스로를 재수가 없는 쪽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생각에 해당되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따라오는 느낌은 '짜증 나'입니다.

 

물론, 긍정의 느낌이 옳고 부정의 느낌은 틀렸다는 식은 지양합니다.

시방 나의 기분이 그러함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 부분은 앞으로 종종 살펴볼 거니까 이쯤에서 멈출게요.

 


생각과 느낌에 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그러면 '시방 느낌'을 다시 써보면 어떨까요?

조금 전에 쓸 때보단 좀 더 명확해지겠죠?

이번에도 느낌의 언어를 하나 쓰시고, 그 뒤에 따라오는 생각들을 그대로 적어 보세요. 생각에 따라오는 느낌을 또 적어보고요. 멈추지 말고 쭈욱 써내려갑니다. 5분 이상 집중해서요.


오늘님, 정말 애쓰셨습니다.

이제 쓰신 글을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실래요?


어떠세요?

오늘님이 쓰신 글을 다 읽고 나니... 시방 느낌이 어떠신가요?


조금 전에 막 쓰기 때의 '시방 느낌'과는 또 다른 감정과 생각이 올라올 겁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자꾸 '시방'이란 말을 쓰고 있네요.

발음이 살짝 욕 같기도 하고 지방 사투리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쓰셨던 글이 떠오르네요.

오늘 날씨를 보고 시방 느낌을 쓰라고. 시방? 시방이 뭐야?  지금 느낌을 쓰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시방이라고 하네? 불편하다. 욕 같다. 편해.. 시방. 서방. 씨방. 씨..


비록 글쓰기 테마에선 벗어났지만, 그분은 말 그대로 '시방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셨네요.

이렇게 의식이 흐르는 대로 쓰는 것을? '막 쓰기'라 하죠. 잊지 않으셨죠?


참고로, '시방'이란 단어는 표준어입니다. 사전적 풀이는 '말하고 있는 바로 이때에'이고요.

오래전, 제 인생에 화두를 던져주셨던 분에게서 처음 들어본 후로 줄곧 입에 머무는 단어입니다.


아, 지금 이때는... 우리 잠시 이별할 때.  

오늘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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