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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12. 2017

#96.이스탄불 그리고 괴레메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터키 #이스탄불 #테오도시우스성벽

#미흐리마술탄모스크 #카파도키아

#괴레메 #2017년8월27일~8월30일


<터키 중앙 내륙에 위치한 괴뢰메>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은 늦잠과 함께 조금 여유롭게 시작되었다. 얼마나 가볼 곳이 많았는지 지난 3일간 꼬박 하루 20시간씩을 투자해 이스탄불을 누볐다. 하지만 천년이 넘는 역사가 남긴 흔적을 모두 둘러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가끔 나에게 '세계여행을 하면 앞으로 여행 갈 곳이 없어져 어떻게 하냐고' 걱정 어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단호하게도 '걱정 마세요'이다. 1년이란 시간으로는 절대 세상을 모두 돌아볼 수 없다.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여섯 개 대륙에는 모두 발을 붙일 예정이지만 모든 나라를 가보지는 못한다. 터키라는 나라 그중 이스탄불이라는 도시 하나를 보는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갈 곳이 없을 만큼 다닐 시간은 더더욱이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다녀도 다녀도 갈 곳은 많고 그런 걱정은 조용히 넣어 두어도 될 것 같다.

<오, 이스탄불에 몇대 없는 귀요미 디자인 트램을 만났다. >

 일분 일초가 귀했던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테오도시우스 성벽 Theodosius Wall'이었다. 변태도 아닌데 왜 성벽 이름을 듣고 설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면 또 매력적인 터키 역사에 대한 설명을 곁들일 수밖에 없다.

<출처: 토크멘터리 전쟁사/ 테오도시우스 성벽 복원 그래픽>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던 시절 '테오도시우스 Theodosius'라는 황제가 있었다. 그는 기존의 성벽으로는 점점 커져가는 도심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해 413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테오도시우스 성벽 Theodosius Wall'을 짓기 시작한다. 두께 5m 높이 9m에 달하는 이 성벽은 해자 뒤 흉벽과 외성벽, 내성벽의 삼중 구조로 건축되었으며, 곳곳에 높이가 18m가 넘는 96개의 탑이 더해졌다.

<어마무시한 성벽 두께. 저걸 어떻게 뚫어.>

 자, 이제 내가 금은보화가 가득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해 쳐들어온 이민족의 수장이라고 상상을 해보자. 며칠 밤낮을 달려 기세등등 군사들을 몰고 왔더니 눈 앞에 어마어마한 넓이의 해자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두께 5미터의 성벽이 무려 3개나 겹겹이 서있다. 성벽의 엄청난 위엄에 살짝 기가 죽지만 일단 초반이니 하드캐리를 시도해본다. 그렇게 여기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뚫었다고 치자. 그다음은 높이 18미터가 넘는 96개의 탑을 하나씩 무너뜨려야 한다. 하. 고구마 백만 개 먹은 것 같은 이 기분. 그렇다. 이 성벽은 절대 절대 뚫을 수 없는 구조로 지어졌던 것이다. 무려 천년 간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엄청난 전력을 가진 성벽. 심지어 투르크족이 천년의 역사를 끊어내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던 날에도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콘스탄티노플 사람이 실수로 열어둔 성벽의 쪽문을 통해 투르크 군사들이 밀고 들어왔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일 뿐. 이런 곳에 가는데 어떻게 안 설레고 배기겠는가.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역사의 장소들>

 멀리서만 봐도 느껴지는 성벽 두께의 압박. 지금은 잔디로 뒤덮여 있지만 해자였던 부분도 넓이가 엄청났기 떄문에 이민족들이 여기를 건너 첫 번째 성벽을 공격하기 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은 사라진진 오래.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특별한 관리 없이 방치 된 곳도 많아 보였다. 투르크족에게 점령 당한 이후에도 성벽은 줄곳 도시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막이었지만, 천년 난공불락의 신화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던 신 무기들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져 갔던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콘스탄티노플의 유적이니 투르크족의 후예인 터키인들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일 수밖에.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말 소풍 나온 것 같았던 테오도시우스 장벽 앞에서 치킨 먹방>

 우리가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간다니까 이틀 연속 새벽까지 함께 수다를 떨었던 가이드님이 숨은 맛집 하나를 알려주셨다. 가게 이름은 '소풍'. 성벽 구경을 마치고 찾아간 가게는 이미 터키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집의 주력 메뉴인 양념치킨을 주문했다. 너무 맛있어서 동공지진. 옆 테이블의 터키인들도 두 접시를 먹고 한 접시 더를 외칠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올라간 것은 남편인데 오금 저림은 왜 항상 나의 몫인가.>

 성벽이 있는 이곳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미마르시난의 애끓는 러브 스토리가 담긴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 Mihrimah Sultan Mosque'이다. 가슴 아픈 짝사랑의 증표가 된 이 모스크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각각 하나씩 위치해 있는데 매년 공주의 생일인 3월 21일 해 질 녘이 되면 두 모스크 첨탑 끝에 해와 달이 동시에 걸리는 장관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단 하나, 공주의 이름이 '미흐=해', '리마=달'이기 때문이다. 천체의 움직임을 건축에 접목시켜 세상 로맨틱하게 재탄생 시킨 미마르 시난. 그야말로 세기의 로맨티스트가 아닐 수 없다.    

<공주를 위해 지은 모스크. 천재의 사랑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평범한 사람은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건축된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 Mihrimah Sultan Mosque'를 보다 잘 감상하기 위해 우리는 근처 성벽 위로 기어 올라갔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꽤 높아서 순간 당황. 나는 무서워서 벽에 등을 대고 가만히 서있었지만 의외로 용감한 남편은 무너지고 남은 성벽 탑의 테두리까지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아마도 높이 18m가 넘는다는 그 탑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남편이 걷고 있는 곳 바로 아래가 낭떠러지라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그래서 그만 내려오라고 남편을 재촉해 안전한 위치에 다시 자리를 잡은 뒤 모스크를 감상했다.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배치된 회색빛 돔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이스탄불에서의 모든 순간이 환호와 아쉬움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짐인척 연기 중인 남편. 좋아 자연스러웠어.>

 도시 외곽에 위치한 성벽 구경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와 맡겼던 짐을 찾아 다시 바쁘게 길을 떠났다. 한 달간의 터키 여정의 두 번째 도시는 바로 '괴레메 Goreme'이다. 터키는 땅이 넓어서 다른 도시로 이동시 최소 5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스탄불에서 우리가 가려는 곳까지는 무려 10시간. 뭐 이제 이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밤새 달려 아침에 도착하는 8시 35분 야간 버스를 탔다.

<거의 모든 버스가 흰색이라 다시 탈 때 헷갈림 주의.>

 버스 기사님은 두세 시간에 한 번 꼭 휴게소에 들러 쉬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한 건 휴게소에 설 때마다 세차를 한다는 것. 터키의 고속버스들은 대부분 흰색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한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다. 모두 다 이 막간 세차 덕분인 것 같다.

<뭔가 아랍스럽기도 하고 뭔가 스타워즈스럽기도 하고. 동공지진.>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쩔대로 쩐 모습으로 도착한 괴레메. 숙소로 걸어가는데 골목골목에서 외계 행성 포스가 느껴졌다. 기괴하게 불쑥불쑥 솟아 있는 이곳 특유의 바위부터 그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호텔까지. 난생처음 본 생명체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꼐랑 께랑 삐롱 삐롱'하고 인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늑한 동굴방. 창문은 없지만 항상 쾌적함.>

 예약을 해 둔 '위스퍼 게스트 하우스 Whisper Guest House'에 도착하니 겨우 아침 8시. 체크인하기에 너무 이르니 짐만 맡기자는 심산으로 직원이 나타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 15분쯤 흘렀을까 푸근한 인상을 한 청년이 나와 여권을 복사한 뒤 방에 당장 입실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었다. 밤새 비몽사몽으로 달려온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서비스가 어디 있을까. 감사 인사를 건네고 편안한 동굴 도미토리 룸으로 입성. 일반적인 도미토리룸도 있었지만 우리는 하룻밤에 천 원씩 더 주고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굴 방을 선택했다.  

<밤샘 이동 후 떡실신>

 터키의 8월 말은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낮동안 매우 더운데 이곳은 동굴이라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다고 했다. 과거 괴레메 사람들은 거대한 바위를 한 땀 한 땀 파내 그 속에 동굴 집을 짓고 살았는데, 아마 그때 당시의 건축 기술이 이 동굴 방에도 접목된 게 아닌가 싶다. 신기하고 이색적인 방 구경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이불속에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 누웠다. 그리고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사경을 헤매는 수준으로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놀랍게도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진짜 시간과 공간의 방이 따로 없다.

<이런 바위는 태어나서 처음 봄. 사람이세요? >

 다행히 아직 밝은 대낮이어서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가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우와. 어우. 눈 앞에 펼쳐진 희귀한 풍경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이게 뭐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서 있었다. 보면 볼수록 이곳이 SF 영화 세트장인지 그냥 영화의 한 장면 속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오묘했다. 하루 6천 원에 조식도 주는 게스트하우스 옥상 뷰가 이렇게 끝내줘도 되는 것일까. 터키와 또다시 진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이 장면 내셔널 지오그래피 책 표지에서 본 것 같다. >

 저녁도 먹고 여기저기 산책도 다니다가 해질 무렵 동네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선셋 포인트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제대로 내려다본 괴레메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몇천 년의 시간 동안 햇볕과 바람과 땅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이 절묘한 장면은 마치 지구의 얼굴에 내려앉은 주름과 같았다. 기괴하게 하늘로 치솟은 바위들과 그 곁을 둘러싼 부드러운 능선이 한치의 거짓도 없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한적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 순간을 깊게 새겨 넣듯 아무 말 없이 지구의 주름들을 들여다보았다. 말이 지워지니 세상에 남은 것이라곤 지구와 나의 숨소리뿐이었다. 초저녁의 살랑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지구의 숨결에는 지나온 세월의 무수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동산에 앉아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것뿐이다.

<아침과는 사뭇 다른 밤 풍경의 매력적인 자태.>

 어둠이 내리자 거리는 온통 따듯한 불빛들로 가득 찼다. 야경까지 살뜰히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모험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이런 상태라면 입을 막아도 가는 곳마다 탄성이 새어 나오는 이 매력적인 도시에 완벽하게 취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괴레메 본격 파헤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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