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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16. 2017

#98.괴레메의 어떤 일상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터키 #카파도키아 #괴레메 #바이람

#레드투어 #로즈밸리 #2017년9월3일~5일


<터키 중앙 동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의 괴레메> 

 터키 중앙 동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의 작은 마을 괴레메. 카파도키아의 이색적인 풍경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당도하게 되는 이 마을은 언제나 여유롭고 너그럽다. 우리도 그 넉넉한 평화로움에 기대 일주일째 이곳에 체류 중이다. 오늘은 지난번 그린투어에 이어 레드투어에 참가했는데 여기에 또 사연이 많다.

<출처: 네이버 검색/ 엄청난 종교 점유율>

 터키는 종교적 자유가 허락된 나라지만 국민의 99%가 이슬람을 믿는 독특한 곳이다. 사실 이 수치에는 약간의 MSG가 첨가되어 다. 자신의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거나 모스크에 가는 등의 종교 생활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터키인 가이드 잼이 말해준 것이니 믿을만한 정보일 것이다. 여하튼 수치적으로 국민의 99%가 이슬람이니 이들의 명절은 모두 종교적 행사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명절 중의 하나인 '바이람=희생절' 기간이다.

<출처: 구글/ 잡은 양의 일부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눈다고 함.>

 이 명절의 기원은 알라가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증표로 그의 아들을 바치라고 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믿음이 강했던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하자 알라는 그 순간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고 어린양 한 마리를 주어 대신 바치게 한다. 그래서 이슬람 사람들은 이때를 기념하여 진짜 양이나 소 등을 잡는다. 올해는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가 그 기간이다. 고로 지금 바로 이 순간인 것.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집 앞에서 산채로 동물을 잡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마주 칠 수 있다고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린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가이드 잼의 예쁜 아내와 귀여운 딸>

 바이람 기간은 우리의 추석같이 아주 큰 명절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의 한국어 초능력자 가이드 잼도 쉬러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인 여행사가 현지 여행사보다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한국어 설명을 들으려고 일부러 신청을 했던 것인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렇게 되면 영어로 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터키와 나는 환상의 궁합 아닌가. 투어 시작 바로 전날 기적적으로 가이드 잼이 출근하기로 했다는 카톡이 왔다. 역시 행운의 터키.

<우치히사르 마을은 아주 잠깐 스치듯 지나감.>

 투어 당일 잼은 엄청난 미모의 아내와 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내가 잼네 가족의 단란한 명절을 방해한 것 같아 약 2초간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그냥 고마운 마음만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잼과 그의 가족 그리고 투어 멤버들이 다 같이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우치히사르 마을 Uchisar Village'이었다. 이 마을에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에 여러 개의 동굴을 뚫어 만든 바위 성이 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성처럼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우치히사르 성은 슬픈 전설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얼굴을 한 채 묵묵히 서있었다. 바위에 듬성듬성 뚫린 동굴 입구는 성의 텅 빈 눈동자처럼 보였다. 할 말은 많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전혀 없는 사연 많은 존재처럼 말이다.

<신이 만든 버섯 농장인가.>

 그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스머프 마을이라고 불리는 '파샤바 계곡 Pasabag Valley'이었다. 만화에서 보면 스머프들이 사는 마을 언덕에는 스머프 보다 덩치가 배나 큰 버섯들이 살고 있다. 그것처럼 파샤바 계곡에도 거대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무리 지어 서있기 때문이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거대한 아름다움, 이곳에 딱 맞는 문장이다.>

 이곳 카파도키아의 희한한 지형들은 모두 여러 번의 화산 분출로 인해 물질들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바위에도 층이 나뉜 듯 부위마다 색이 다르다. 매 화산 폭발의 시기마다 쌓인 물질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로 다른 물질은 서로 다른 강도를 지니고 보다 무른 물질이 더 빠르게 마모되어 갔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버섯 모양 바위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오늘도 바람과 태양의 힘으로 조금씩 그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등에 한 번 타보고 싶은건 나뿐인가.>

 특유의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아바노스 마을 Avanos Village'로 이동하기에 앞서 낙타 바위와 가족 바위 앞에 잠시 멈춰 사진 찍는 시간을 가졌다. 낙타 바위는 진짜 낙타 같아 보였는데 가족 바위는 약간 과한 스토리텔링인듯했다. 오래도록 바라 봤다면 정말 가족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해가 너무 뜨거워서 10초 이상 볼 수가 없다는 것이 함정.

<메르하바! 터키 기념품 판매왕 컨셉.>

 점심 식사 후에는 터키 전통 도자기로 유명한 '아바노스 마을 Avanos Village'에 갔다. 그곳에서 잼은 도자기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공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공방 직원이 나누어준 시원한 사과 차 한잔을 마시니 도자기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도자기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붉은 흙은 근처 크즐강에서 얻는데 이곳 흙에는 철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고온에도 잘 견디며 매우 견고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철이 들어간 도자기라니. 정말 튼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설명중인 직원과 가이드 잼>

 물레 돌리는 시연을 본 뒤 옆방으로 가니 여인들이 세밀 붓 하나씩을 들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도자기 위에는 주로 기원전 2000년경 이 지역을 점령했던 히타이트 제국의 무늬들이나 오스만 제국의 전통 무늬들을 그려 넣는데 최근에는 무늬 위에 야광 도료를 발라 불을 끄면 환하게 빛이 나는 도자기도 만든다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가이드가 작업실의 불을 껐고, 벽에 걸린 접시들에서 어마 무시한 야광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세상에나. 부엌에 걸어 놓으면 밤에 물 마시러 가다가 오줌 쌀 것 같은 포스다.

<밤에 물마시러 나가다가 오줌쌀각인 접시ㅋ>

 만드는 방법을 모두 구경하고 나니 자연의 이치 마냥 연결되는 도자기 매장. 쓱 한 번 돌아보는데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가격도 몇천 원부터 몇천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몇천만 원짜리 도자기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몸을 조심하게 됐던 것 같다. 혹시나 하나라도 깨는 날엔 그대로 귀국이니까.

<뜨거운 해를 피해 야외 박물관 그늘에서 잠시 쉬기.>

레드투어의 종착지는 '괴레메 야외 박물관 Goreme Open Air Museum'이었는데, 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엄청나게 오래된 바위 교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안에는 천년도 더 된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감상하느라 아쉽게도 사진을 하나도 못 찍었다. 그 덕에 꼼꼼하게 하나씩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말이다. 성화들은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었는데 대부분 얼굴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슬람을 믿는 튀르크 민족이 터키를 점령한 이후 기독교 성화의 얼굴을 지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이것 또한 복잡하고 흥미로운 터키 역사의 일환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순간 부러울 것 하나 없다.>

 할만한 투어가 모두 끝나고 특별히 별일도 없는 날은 그늘 좋은 옥상 흔들의자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싸고 맛있는 집 근처 피데 가게에 가서 피데 두 판을 순식간에 해치웠는데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갔는지 서빙하는 친구가 매일 하나둘씩 터키 말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맨 처음 그가 가르쳐 준 말은 이것이었다.


'어디 가니? = 내레예 지디 요르순'


 그는 터키어를 일도 모르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을 가르쳐 주는가. 당연히 처음에는 제대로 따라 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굴의 선생님은 우리가 가게에 갈 때마다 어디 가니를 반복 학습시켰고 결국 여섯 번째 방문하던 날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언어 학습의 왕도는 반복인 것인가.

<동네에 흔한 유적.jpg>

 그리고 해 질 녘쯤, 주변 암석들이 모두 핑크핑크한 로즈밸리로 트레킹을 떠났다. 가는 길에는 역시나 기가 막히게 멋진 동굴 교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더 말해 뭐하겠는가. 처음 느꼈던 신기함이나 놀라움은 이제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다.

<로즈 밸리 가는 길, 개구짐 만랩 꼬마들.>

 이 트래킹의 핵심은 로즈 밸리에 올라가 석양을 보는 것인데 가는 길이 흙길인 데다 약간 험해서 바지가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다. 하지만 중간 지점 마을의 꼬마들이 아주 귀욤 귀욤 하다. 길목에 앉아 있다가 자기네 가게에서 석류 주스를 사 먹으라고 낯선 이방인들 뒤를 졸졸 쫓아오며 날리는 짓궂은 미소. 이런 것이 바로 괴레메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하루 종일 열일한 해야 수고했다.>

 뜨거운 해가 대지 위로 몸을 눕히고 차가운 달이 세상을 식히는 순간 로즈 밸리의 명당에 오른 우리는 멍하니 주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단전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듯한 감동이 파도처럼 거세게 몰아친다. 어떤 화산이 터졌길래 이렇게 예쁜 암석이 생성된 것일까. 몇천 년에 걸쳐 그라데이션까지 차곡차곡 쌓아가며 만든 자연의 작품. 진심 로즈밸리는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팬톤에서 참고해야 할 만한 곳이다.

<로즈밸리의 아름다운 핑크 그라데이션>

 이렇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괴레메에서의 일주일이 모두 끝이 났다. 이스탄불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매 순간 우리를 감탄하게 하고 감동하게 했던 이 괴기스러운 도시가 당분간은 너무나도 그리울 것 같다. 하지만 곧 닿게 될 다음 도시도 이에 못지않은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우릴 맞아 주겠지. 한 나라를 여행하는 중이지만 매번 다른 나라에 가는 듯한 다채로운 느낌의 터키. 오늘보다 내일이 그리고 내일보다 모레가 더 기대되는 이곳을 세상 모든 여행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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