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호주 #멜버른 #작별

#진짜시작 #2017년2월27일~28일


이제 곧 호주를 떠나게 될 우리에게 삼촌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것은 코스트코. 한국에도 어딜 가나 있는 건데 굳이 여기서 가야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은, 코스트코 멜버른점에는 이곳만의 독특한 두 가지 매력이 존재한다. 매력 포인트 하나. 고퀄리티 소시지가 들어간 반수제 핫도그+무한 음료수가 단돈 1.99달러. 핫도그를 주문하면 소시지만 달랑 넣은 빵과 빈 컵을 준다. 그럼 옆에 마련된 셀프 바에서 다진 양파와 케첩, 머스터드, 피클 소스 등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핫도그를 채운 뒤, 빈 컵에 원하는 음료수를 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단돈 1,700원 밖에 안될뿐더러 재미도 있고 맛도 있다. 고로, 호주에서 만난 음식 중 '코스트코 핫도그'를 가성비 갑으로 진지하게 임명하는 바이다.

<한땀 한땀 취향대로 만들어 먹는 코스트코 1.99달러 핫도그>

매력 포인트 둘. 나만을 위한 스페셜 '관' 서비스. 핫도그를 먹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리니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물건을 이곳은 판매하고 있었다. 바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관! 이곳 사람들은 '음 오늘은 관 쇼핑 좀 나서 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휙 차를 몰아 코스트코에 와서 디자인과 나무를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친절한 배송 서비스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본인이 수령하지 못한다면 장의사에게 바로 보내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에 수의와 납골함을 파는 매장이 따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상상을 하다 보니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영화 속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주인공이 자신이 입을 수의 옷감과 납골함 디자인을 꼼꼼히 따져 고르는 장면이 언뜻 떠올랐다. 우린 언제나 보장되진 않았지만 보장될 것 같은 내일을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준비라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 다가 올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는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 위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늘 지금 이 순간 더욱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생의 단 한순간도 헛되이 사용하기 않겠다는 강한 다짐이기도 하다.

<코스트코 자네, 참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는구먼>

코스트코 구경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렀다. 삼촌이 잠깐 일을 보시는 동안 우리는 포커스 온이라는 가게에 들어가서 아이들 옷과 장난감을 구경했다. 청바지 코너를 지나가는데, 무언가에 이끌리듯 10세 사이즈를 들어 다리에 대보았다. 아. 외마디 탄성과 함께 나의 성장이 이곳 기준으로 10세에 멈추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살 주제에 다리가 왜이리 긴가.. 그게 맞는 난 또 뭔가>

호주 아이들이 좀 크긴 했지만,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좋았다.(읭?) 줄이지 않고도 입을 수 있는 청바지라... 가격도 15달러로 매우 저렴한 마트 청바지... 컬러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기본 진. 어쩌면 이곳은 어린이들이 아닌 작은 어른이 들을 위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옷을 지나 장난감 코너로 들어섰다. 착용 가능한 모든 아이템은 나를 지나칠 이유가 없다. 아마도 정말 이곳은 작은 어른이 들을 위한 공간일지 모른다. 이 정도면 맞다고 봐도 된다.

<좌 닌자 우 캡틴 에브리바디 크레이지>

신나게 구경을 하고 최근 급 필요해진 서브 노트북을 보기 위해 하이마트 같은 곳에 들렀다. 고사양을 기준으로 보니, 가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걸 보던 남편은 글만 쓰고 간단한 검색만 할 거라면 최소사양으로 구매하자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아수스에서 나온 313달러짜리 노트북을 골랐다. 직원이 우리가 고른 노트북 제품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현재 세일 기간이라 240달러만 내면 된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ssd카드가 탑재되어 있어 313도 싸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70달러 정도 더 저렴해진 것이다. 거기다 삼촌은 '숙모가 너희에게 노트북을 사주고 싶다고 했고, 내가 이걸 결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날 괴롭힐 거야'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시며 계산까지 마쳐버리셨다. 얼떨결에 생겨버린 노트북 2호. 감사하면서도 무거운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하다가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즐거움의 크기를 잘 알기에 우선은 기쁘게 받아 두기로 했다.

<반딱 반딱 광이 나는 숙모의 선물 노트북. >

집으로 돌아와 숙모께 감사한 마음과 우리가 얼마나 기쁜지에 대해 풍성하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단출한 몇 가지 문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중에 영어를 더 잘하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더 풍성한 감사를 전할 수 있길 바라본다.

<6살 꼬마가 남편에게 매형이라 부른다 풉>

어찌 되었든 마지막 하루가 가고 떠나는 날이 돌아왔다. 오후 2시 반쯤 집에서 나가 공항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사촌동생 유진이와의 인사는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현지 학교는 처음 가봤는데, 신기한 것은 모든 아이들을 부모가 직접 등하교시킨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정해진 연령까지는 혼자 걷거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곳 아이들은 수업 시작 시간인 8시 30분 전에는 교실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놀이공원 개장을 기다리는 들뜬 표정으로 교실 앞에 줄을 서있는다. 우리는 그 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아직 헤어짐을 이해할 수 없는 6살 아이는 일상처럼 뒤돌아 교실로 들어갔다. 헤어짐은 늘 그렇듯 빠르게 찾아와 느리게 사라진다.

<새로운 끝과 시작 앞에서 살찌기 있기 없기>

숙모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니 안녕이란 인사는 잠시 넣어두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나는 그녀의 너그러운 미소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존경한다.


삼촌은 우리를 공항에 내려주시기 위해 연차를 내셨다. 공항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정도가 소요된다. 도착해서 차 한잔 마시며 삼촌과도 인사를 나눴다. 루트 구성 당시, 여러 번의 수정 끝에 정해진 첫 번째 여행지 호주. 이렇게 많은 즐거움과 추억을 안고 떠나게 될 줄 몰랐다. 이 여행이 끝나는 1년 뒤 또다시 기회 주어진다면, 우리의 처음이 되어준 이 곳에 와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멋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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