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촉감이 확실히 달라요.
"걷기의 시간이 나에게 주는 것"
지금 거주하는 곳으로 2년 반 전에 이사를 왔어요. 이전 거주지의 지형은 '산'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사방이 평지입니다. 저는 등산에 맞지 않는, 지구력이 부족한 체질이다 보니, 예전에는 걷기를 섣불리 일삼지 못했어요. 또한, 워낙 짧은 시간에 땀을 쫙 빼는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테니스에 미쳐 있기도 합니다.)
지금의 거주지에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는 일주일에 3회 이상은 1시간 정도 걷고 옵니다. 걸으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것을 다양한 가게들을 구경하며 체득하고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상점이 수시로 문을 닫고 다시 여는 것을 볼 때는) '시장의 다이너미즘은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숨이 차구나.',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는 상점을 볼 때면) '그 안의 아르바이트생은 고생이 참 많구나.' 등 많은 감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걷기’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별안간에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봤던 가수 ‘나훈아’님의 트로트에 대한 강연이 생각났어요. 트로트 박자는 말(horse)이 타박타박 걷는 그 템포와 같다고 하시면서,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싱크로가 잘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이와 유사하게 나의 ‘걷기’는, 적절한 템포 속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주는 듯합니다.
영화배우 하정우가 걷기를 알알이 챙겨가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어느 날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까지 낸 것을 보고 인상을 뭉근하게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연찮게 평지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사를 하고,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며 시설 스포츠를 피하게 되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걷기를 꾸준히 해보니 - 하정우 님 같은 분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 '운동의 걷기'라기 보단 ‘걷기의 시간’이라는 개념이 되었어요. 하정우 님 표현에 따르면 ‘본인의 호흡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의 시간이라고 하였는데, 저에겐 저의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보냈던 시간을 하나하나 짚어 보는 시간이 됩니다.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내 몸이 가지는 감각에 차례대로 집중합니다. 평소 아픈 줄 몰랐던 부분이 ‘아프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내 허리를 곧추 세워주는 근육이 이것이구나.' 인지하게 되며 거기에 힘을 한번 더 바짝 주게 됩니다. 바닥에 내 발바닥이 어떻게 닿고 있는지 느껴봅니다. 발뒤꿈치부터 앞까지 부드럽게 차례차례 땅에 닿습니다. 그러면서 흙길이 보이면 그 길로 자연 발길이 향합니다.
걷는 박자는 생각을 같이 할 수 있게 해주는 박자 같아요. 제가 푹 빠져있는 테니스는 그 격렬함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반면, 걷기는 걷기의 리듬이 생각의 뇌파를 자극하나 봅니다. 그러면서 좋은 문장도 떠오르고 다음엔 어떤 주제로 글을 써봐야지 다짐하기도 합니다.
걷기. 나에게 맞는 박자와 시간으로, 사부작사부작~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덧. 걷기에 대한 탐색을 하다 걷기에 대한 제 이야기 톤과 통하는 설명글을 발견하여 공유해봅니다.
'다음의 삶을 고민하는 레터' 라라레터(linktr.ee/lala.letter)에 실었던 글(4호. 2022년 3월 20일 발행)을 다시 에디팅을 거치어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