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말자.
더럽고 아니꼬운 일을 겪고 나는 더러워서 퉤퉤 거리고 그 자리를 뜨는 방식을 취해왔다.
피곤한 게 딱 질색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피곤함이 머리와 눈언저리에 내려앉는 그 느낌에 휘감겨 그냥 피해버리고 만 거다.
'도망치는 건 어리석다.'라는 당연히 옳은 이 말이 나에게 좀처럼 적용되지 않았다. 왜?
일종의 마음의 습관이 자리 잡은 것이다. 아주 여러 군데의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온 것도 그 습관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어떤 일을 할 때도 해결을 하려 하기보다는 더럽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이유에 천착해서 퉤퉤 뱉어버린 것이다.
어제 남편과 사는 이야기를 딥하게 하면서 작지만 계속 나를 괴롭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번 '아니다.'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계속 그쪽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음을 진작에 깨닫고는 있었다. 안되는 이유만 계속 덧붙이고 어서 결론이 나길 바라는 것이다.
피곤하고 괴로운 그 시간은 짧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남편과의 대화 속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의 전환이 일어났다.
염려되고 무서운 것 때문에, 피곤하고 짜증 나는 것 때문에 여기를 피하면, 다른 데서는 그럼 그런 게 과연 없을까? 또 있다. 당연하다. 어떤 관계가 깊어지고, 어떤 일에 깊숙이 개입되면 분명 그런 지점들이 생기고야 만다.
그때마다 피하면 나에게 남는 건 무언가?
계속 버티고 버텨서 좋은 점을 최대한 뽑아먹고, 안 좋다 결론지은 것에 대해서도 일부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좋은 것으로 치환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도망치지 말자." "나를 믿자."
당분간 이 말을 붙잡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