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써보기로 한다] 작정의 글
[서문] 너무도 '나다운' 이야기의 시작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려 하는가?’
책의 서문을 쓸 작정을 하긴 하였으나, 그 시작점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수없이 고민되었다. 이 책에서 풀어낼 이야기가 왜 쓰여져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득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과연 이해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적정선을 그어야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너무도 ‘나다운’ 이 이야기를 세상에 표출하기를 누구보다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박차고 나아갈 나의 인생을 위해 단단한 디딤돌을 세우는 것이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이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경력단절’이라는 말에 대해 이 사회가 가지는 피로감 때문에 내가 하려는 시도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사실, 이 사회가 정말 피로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이 담론의 현장에 참여를 너무 많이 했기에 스스로 피로해진 것인지 확인이 잘 안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이 되듯, 대체로 '경력단절'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없진 않았고, 그 선입견이 감지되자마자 나의 말투엔 자신감에 떨어지기도 했다. 이 선입견이란, '경력단절'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것이 없고, 논의의 지점이나 방법이 딱히 새로울 것이 없고 명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단절’ 또는 ‘경력 보유’라는 단어의 사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독자들에게 제안할 나의 콘텐츠가 굳건한 고유성을 갖기 위해 나의 관점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다. 아직 모든 준비가 완전한 것은 아니나, 나의 콘텐츠를 사람들과 소통하며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때 적어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소통을 지속할 만큼의 준비는 되었다고 믿는다.
1977년에 태어난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은 대체로 자아실현의 측면에서 사회적 장애물에 대한 언급을 거의 듣지 못한 채,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성장하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서 일하는 인생을 살거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윗세대 여성들이 사회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자신들의 실현 욕구를 알아갈 기회, 또 알게 되어도 펼쳐낼 기회가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결혼-출산-육아의 시간을 거치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세팅이 나에게 씌워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에이, 거짓말..’이라 되뇔 정도로 당황스러웠으며, 떠밀려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저마다의 드라마가 다 있을 터이고 나 역시 그러하지만, 그 사연을 모두 이 책에 푸념조로 풀어놓을 의도는 없다. 지금이라도 다행스럽게도 도달한 일종의 전환적인 태도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졌을 때,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하소연하면서, 알고 보니 팽배하여 있는 ‘불합리의 당연시’를 여실히 느끼며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기껏해야 가정 내에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는 점을 깊이 자각했다. 그때와는 다른 질감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각오와 향후의 구체적인 계획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강조할 ‘사회적 실현 관점에서의 내적 욕구에의 집중’이 어떻게 앞으로의 인생설계를 위한 주된 기준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 겪었던 좌절감의 원인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기는 하나, 가능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때론 공감을 좀 더 얻기 위해 약간의 감정어가 섞여 들어갈 수도 있다.
비슷한 처지와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이들과 함께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팟캐스트 콘텐츠, 뉴스레터 콘텐츠 등을 생산해오기도 했고, 다양한 이야기 모임과 매체 등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그들의 욕구, 그리고 ‘나의 욕구’에 대해 분명하게 자각해감에 따라, 나의 실천을 구현해내기에 어려운 상황 또는 핑계인지 모를 원인 등이 나를 주저앉히기도 했다. 좌절하고 점차 꺼져가는 기분이 들 때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되어 그 어떤 것도 실천할 의지를 발동할 수 없었다. 정말 긴 시간 동안 부정적인 감정에 잡아 먹혔다가 조금 기어올라와 타협적인 일이라도 이어가다가, 다 때려치우고 싶어 때려치웠다가,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나 답게 길을 닦아 나가 보려고 노력하기를 널을 뛰듯 반복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바닥을 치면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꼈던 지점은 ‘감정’으로 가득 찬 내가 감정에 따라 나 자신이나 가족, 주변을 대하는 태도가 급변하곤 하는 것이 ‘나’라는 존재의 알맹이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었다.
이윽고 나는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선언을 나에게 하고, 주변에도 떠들고 다니며, 묻고 따지지도 말고 그 선언에 계속 매달렸다. 경계선을 치고 그 너머로 넘어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둘러싼 삶의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사고의 틀’을 정립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믿게 되었다.
‘삶을 산다’는 것은 무언가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능동적으로 다음 스텝을 계획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인정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내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한 가운데 여전히 내 의지를 발동하여 이뤄갈 수 있는 부분을 끝까지 밝혀내 보자. 누굴 원망해 봐도 내가 원하는 시간 안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내 시간이 없어지고만 있을 뿐. 이 가혹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어떡해서든지 내가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가 내 삶에 계속 작동할 수 있도록 가치 실현을 위한 사고방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것임을 강력하게 제안하고 싶다.
출산과 육아를 거친 여성들은 자신의 세상이 모조리 무너지고 - 달리 표현하면, 그간 자기의 의지와 노력이 주된 변수로 작용하였던 시공간은 아득해지고 - 다시 세워 올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를 둘러싼 삶의 요소들, 이를테면 공간, 시간, 가족 구성원, 사람 관계, 교육, 취미, 책, 글 등 각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느냐에 따라 연결된 실천항목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본문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해 절감한 바에 대해 독자들과 공유하고 그들의 제안을 역으로 많이 받고자 일단 풀어내어보겠다는 의도를 갖고 이 책을 쓴다.
이러한 해석과 사고의 틀이 긍정적인 생각들을 계속 불러일으키고 ‘나다움’, ‘나의 욕구’와 닿은 작은 실천들을 계속하게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제안들이 서로 교류되고 그 내용에 대해 깊이 대화하는 시간들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활동들로 더욱 구체적으로 영글고 확산되는 그림을 그려 본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력단절’ 문제의 해결 대상으로 자리한 프레임 속에서 박차고 나왔으면 좋겠다. 능동적 실천의 주체들의 플레이그라운드가 이야기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작은 씨앗으로서 이 책에 담긴 나의 제안이 쓰였으면 한다.
서문답게, 고마움을 전할 사람에 대한 언급을 빠뜨릴 수 없겠다. 가장 먼저, 내가 끄적이는 글들을 일일이 읽어 주고 긍정적인 피드백과 도움말을 건네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내가 글을 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남편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맛집 소개글 하나가 그래도 글 다운 글로서 처음 써본 것이었는데, “문장이 간결하고 의미가 잘 전달되는 것이 ‘김 훈’ 같은데?”라고 터무니없는 농담이지만 힘을 주는 피드백을 주었던 매우 감사한 기억이 있다. 엄마가 작업을 한답시고 집중할 때 ‘엄마의 일에 대한 존중’을 강요받은 -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뿐이었을 터인데, 여전히 계속 존중하라 주장하였던 것이므로 - 딸 재인에게 미안하고, 그래도 결국엔 엄마의 일을 존중하여 준 것이 너무 고맙다. 어른 여자로서의 별의별 고민, 특히, 한 인간으로서, 또한 엄마로서, 아내로서 겪는 온갖 번민과 유치한 감정들을 진심으로 나누어준 김희정 언니와 경애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낀다. 또한, 나의 길에서 나란히 옆에서 자매애로 늘 따스하게 감싸주고 격려를 진심으로 꾸준히 해준 ‘절친’ 그룹 멤버인 민정언니와 영미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정말 결정적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블루 보트’ 멤버들. 사회적 기업 창업 교육과정에서 운명처럼 끌려 한 팀이 된 2022년 여름부터 서로에게 뽐뿌질을 열과 성을 다하여 해주며 진한 파트너십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콘텐츠를 정리하고 축적해나가기 위한 글 한 줄, 말 한마디, 영상 한 토막 등을 하루하루 꾸준히 꺼내놓는 힘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최은영이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나 묵묵히 기다려주고 격려해준 가족 소영, 하늘나라에서 내가 뭘 어찌하여도 흐뭇하게 바라봐주고 계실 어머니에게 이 책을 자랑스럽게 보여 드리고 싶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또한 연결될 이 세상 여성들 덕분에 이 책을 채우는 이야기들의 단초를 얻을 수 있었기에 늘 그들을 귀하게 여길 것이며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고민할 것이다.
다시 살아나는 우리 모두를 간절히 바라며, 2024년 0월,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최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