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미화할 필요 없는 바로 그 딱! 엄마 생각은 아무리 '하여도 하여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 언어 거기까지만 표현되는 듯해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고,
끝까지 다 담아내자면 끝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시작부터 어렵다.
요즘 들어 더 자주 엄마가 떠오른다.
2013년 6월 뇌출혈로 그렇게 허망하게 쓰러지시고 병상에 8년 간 계신 기간 동안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속으로 엄마를 찾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에게 질문할 것들이 참 많은데 할 수가 없네.'
'엄마, 나 아이한테 너무 짜증을 많이 내는데, 엄마는 나에게 안 그랬던 거 같거든?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걸 다스렸어요? 짜증이 안 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엄마, 엄마는 해주기로 한 약속을 거의 어김없이 지켰어요. 그때도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대단한 거 같아. 엄마는 엄마의 역할과 책임이 뭐라고 생각했길래 그런 각오가 되었던 거예요?'
정말 순간순간 엄마에게 배우고 싶었다. 분명히 도움을 주셨을 터인데.
시댁에 꼬박꼬박 용돈을 적지 않은 금액을 드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잘 드리다가도 열불이 날 때가 있었다. 짜증 내는 나에게 그때마다 "그렇게 드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부모님이 필요로 하시는데 너네가 형편이 못 되어 드리지 못하게 되면 그게 더 가슴 아픈 일 아니야?"라고 말해주셨다. 이렇게 도인 같은 말씀을 하실 때마다 겸허하게 수용하게 되며 엄마는 나에게 참 도움이 되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요즘은, 부쩍 엄마랑 함께 즐길 수 있었을 인생의 묘미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랑 인생 이야기 나누면서 새롭게 깨우쳐지는 게 얼마나 많을까?'
'유쾌한 엄마와 팔딱거리는 손녀와 같이 놀면 같이 얼마나 즐거워할까?'
하루하루 세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생각과 언어 작업을 계속하면서 살아간다. 세상과 연결된 나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흐릿해지려 하면 다시 붙잡고 또다시 붙잡는다. 깨우쳐진 것에 순간 맑아지는 듯했다가 그것이 오래 잡혀있진 않다. 그래서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지어간다는 것으로 형상화되곤 한다. 지어가고, 세워가는 마음 농사.
엄마가 지금의 나와 대화를 나눠 주신다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들어주시다가,
"은영아~~ 너무 어렵다. 근데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말씀해 주시겠지?
엄마에 대해 썼던 글을 찾아보았다.
가능하다면 깨알같이 시간을 더듬어 모두를 글로 풀어내고 싶다.
'엄마, 지금은 평안하시지요? 의식 없이 누워계셨던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의식이 저 구석에 남아 있어 '생각'이란 것을 하셨다면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아마 미쳐버리시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제 마음도 너무 괴로워요. 아무쪼록 거기서 생전에 가꾸셨던 것처럼 예쁜 정원에서 즐겁게 놀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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