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요물.
'아이'라는 존재에게 부여되는, '아이라서 무조건적으로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개념.
하.... 이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가 사실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그 '진리'는 '진리임'을 내 안다. 그 진리가 진리일 때의 차원이 아닌, '나'라는 인간이 인간적으로 배려를 받는다면 뿜어댈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부모는 죄인인가?
자식과 부모 간만큼 불평등한 관계가 또 있을까?
아무리 미숙하다고 해도, 성숙의 과정에 부모가 절대적으로, 지속적으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볼 때 가혹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이 사회는 자식새끼 키우는 데 있어서 부모에게 가혹하다. 현재 진행형의 아이가 가진 여러 가지 면모에 대해 결국 그 원인은 부모이다, 집안이다 결론짓는 경우가 많다. 이 사회는 아이 성장과 교육, 정서의 함양에 있어 신뢰할만한 소프트웨어 마련에 제대로이지 않으면서, 온 매체에서는 엄마의 역할이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엄마표 무엇 무엇, 아이는 문제없고 부모 탓이다 등 좁디좁은 최소 단위의 가정으로 원인을 귀결시킨다.
아이가 4학년만 되어도, 아침 8시 30분에 등교해서 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귀가시간이 오후 5시이다. 그 이후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영상을 보거나 슬라임을 만지며 놀고,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대충 탱자거리다 보면 잔다. 가정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고 가정에게만 탓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온갖 매체와 자신이 처한 제도권 교육에서 받아들이는 자극이 아이의 소위 문제 행동의 원인일 확률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변수들이 아이를 치고, 휘감는 동안 아이에게서 보이는 새로운 말과 행동의 양상은 부모에게 매일의 도전이다. 인간적으로 심정이 상하지만 부모라서 어른이라서 감정적인 표출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기에, 어쩌다 해버릴 때 자괴감은 얼마나 나를 괴롭히며 그 피곤함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지,, 방치와 간섭 사이 어드메에서 헤매며 계속 힘들어하고만 있지, 적정한 육아와 교육의 범위를 잘 찾지 못하게 된다.
부모노릇은 고상하고 숭고하게 힘든 줄 알았다. 이렇게 유치하고 욕 나오게 힘든 줄 몰랐다. 나는 최고의 엄마가 될 줄 알았다. 아이 출생 후 첫 똥을 능숙하고 여유 있게 처리할 때 정말 그렇게 믿었다. 나라는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찢었다 다시 기워 추스르게 만드는 아이라는 것은 참 요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