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서 바라보고 해체하기' 하부 목차 1 - 독박육아
이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 전부터도 용례가 있긴 하나, 약 칠 팔년 전 즈음부터 ‘독박육아’라는 용어의 등장이 빈번해지기 시작했어요. 2016년 6월에 팟캐스트를 ‘씽투육아’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첫 에피소드의 제목이 ‘독박육아에 대하여’ *였어요. 당시 공동육아의 다양한 해외사례를 살펴 보고, 국내에도 그러한 시스템이 도입되길 희망했었는데요, 현재는 국내 여러 곳에서 ‘마더센터’가 운영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독박’이란 ‘다른 사람의 몫까지 전부 혼자 감당한다’는 의미를 가지는데요, 현대사회에의 ‘독박육아’의 맥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될 수 있을 듯 하네요. (*팟캐스트 ‘씽투육아’를 검색해주세요. )
현대의 각 가정은 거의 고립되다시피 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다른 가족들의 육아 참여는 제한적이 되었습니다. 출산을 그렇게나 독려하고 있는 국가에 의한 지원도 “여성의 다음의 삶”의 설계를 위한 시간 확보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전혀 실질적이지 않습니다. 재정적인 지원은 감사한 일이지만, ‘만 3세 이하 유아를 ‘안심’하고 맡길 만 한 수준의 돌봄기관이 있는가?’, ‘직장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돌봄체계가 있는가?’ 질문할 때는 한계가 많은 현실이지요. 그래서 민간 영역에서 ‘마더센터’와 같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필요한 각종 지원을 설계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그 공간에 출근하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놀이를 하고 돌봄주체들(엄마를 포함하여 아이 주양육자)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어, 안정적인 정서의 상태를 양쪽 모두에게 주게 되지요. 그러나, 이 ‘마더센터’의 형태도, 일과 육아 모두를 지속시켜준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육아’에 대한 비중이 적잖이 큰 만큼, 육아와 조화로울 수 있는 일 내에서 선택 가능하다는 점에서 타협이 필요한 경우이긴 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의심과 염려가 많은 사람에겐 곁에서 아이를 자주 들여다 볼 수 있는 형태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만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또는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자신의 의사 표현을 비교적 정확하게 할 수 있을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이런 식의 방식을 취해가다 보면, 결국, 그 이전의 경력에서 벗어나 새롭게 길을 닦아야 하는 필요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여도, 여성의 ‘다음의 실천’을 위한 스텝을 밟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의 확보가 가능할지 미지수입니다. 또한, 쉽사리 신뢰할 수 없는 서비스들은 선택할 수 없기에 원하는 만큼 그대로의 시간의 확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 품질의 시간이 나의 삶에서 대체로 박탈되었다는 차원에서 '독박'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경제적인 활동의 일을 시작하고 싶거나,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나 다른 지속가능한 새로운 일을 찾고 싶거나, 경제적 활동은 반드시 아니더라도 나의 생명력 자체의 회복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찾고 싶은 경우 등 다양한 경우들이 있을 텐데요, 요지는 현 상황에서 나의 내적 핵심이 발동되어 새롭게 현실에 구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경우입니다. 모든 경우에 대체로 주양육자, 대부분 한 가정의 엄마가 ‘독박’의 경우에 처해있는데요, 위에서 얘기한 ‘새로운 것’을 하여야 ‘살 것 같다.’ ‘살아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독박이 일정 부분 해소되어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한편, 독박의 상황을 구성하는 목록을 일일이 작성해내는 것은 또 하나의 독박스러운 일이 됩니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기까지 하는 일, 일하는 중에 계속 울려대는 학교 어플리케이션의 '띵띵' 알림 소리와 그에 대한 대응의 사항들, 가정의 소모품 유무를 확인하고 재구매를 하는 것, 작아진 아이 옷을 정리하고 버릴 것 버리고 새로운 것을 구입하며, 내 맘대로 구입하지도 못하고 일일히 아이에게 디자인을 확인받고 구입하는 것, 각종 집안 일 등, 또 그 외 인식하지 못하고 해결해내는 것까지 하면 얼마나 많은가요? 그것을 다 작성하고 적정 퍼센티지를 남편에게 일임하는 것, 가능할까요? 사실, 뭘 좀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우리가 힘든 건 아닐 겁니다. 얼마나 힘든지 잘 몰라줘서 힘들지요.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응원을 좀 받으면 훨씬 덜 힘들어질지도요. 그리고 정말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그것이 허락되기만 하여도 독박이란 생각까지는 안 들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런 접근을 언젠가부터 하였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보니까, 또 사사건건이 ‘내가 다 하는 거 억울하니까 남편이 하세요.’라고 따지듯이 대하니 상대도 나도 너무 피곤해요. 사이도 나빠지고요. 그래서 나의 ‘목적성’을 분명히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묻고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일할 권리’를 나도 가져가야 하는데, 왜 이런 수고까지 하면서 획득해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억울한 감정을 오랜 시간 겪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걸 하지 않으니 같은 상황이 그냥 흘러가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안 생기더라고요. 나도 남편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기준이 잘 서지 않는 거죠. 나를 주저 앉히려는 어떠한 음모도 없고 말이지요. 너도 나도 다 참 안된 중생들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 가계에 일정 금액이 더 필요하다고 결론이 나거나, 또는 길게 가지고 갈 일을 구체적으로 고안하게 위해 긴 호흡으로 고민하고자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파보겠다고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시간적/물리적 자원을 정리해보는 게 필요했어요. 그 다음, 그 자원의 필요를 준비한 명분으로 남편에게 주장하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육아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을 때, 파트타임 일은 제한된 시간 내에 끝내기에 급급했고,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지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에 새로운 일의 설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하니,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남편이 퇴근하자 마자 카페에 나가서 일하겠다고 했고, 한 달에 한번 가능한 남편이 월차를 쓰게 해서 9 to 6로 온전히 집중해서 일하겠다고 했어요. 물론 이상적으로 잘 이뤄지지 않았지만, 상징적으로나마 어렵사리 계속 주장함으로써, 남편의 인식 변화에 조금은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나의 필요와 욕구에 집중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독박’의 틀을 깨나가는 방법을 제안해 보아요.
여러분의 독박의 양상은 어떠한가요? 어떤 힘듦을 겪고 있나요?
제가 다 들어 드리고 같이 욕하다가 우리 전략도 같이 짜보아요. 우리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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