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위에 Jun 23. 2020

운동에서 찾는 만족감의 차이

테니스 게임에서의 승패가 뭐 그리도 중요한가요?


나와 함께 테니스 복식 파트너로 방금 게임을 마친 김프로의 얼굴 표정이 굳어있다. 게임을 져서가 아니다. 물론 이겼다면 좋았겠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게임 중에 주고받은 말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경기중에 김프로는 상대편이 친 볼이 ‘아웃(out)’이라는 콜을 했다. 그런데 상대편 박프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인(in)’이라고 강하게 맞 받아쳤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둘 간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갑자기 박프로가 우리 편 코트로 넘어와 김프로에게 똑바로 보란 듯이 공이 떨어진 위치를 짚어 보이며, 또 한 번 강하게 어필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주먹다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심리적으로 과열된 상태인 셈이다.
여기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비디오로 찍어둔 것도 아닌데 이미 지나간 볼을 되돌려 볼 수 도 없는 노릇이니...

조금 의아해하실 수 있겠으나, 보통의 동호회 테니스 경기에서는 심판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상처 받은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슬그머니 다가가서 말을 걸자. 김프로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다.
이런 경우, 게임이 끝난 후에 박프로와 김프로가 서로 쿨하게 풀었어야 하지만, 이미 박프로에게는 잊힌 사건이 된 듯하다.
이전에도 박프로의 이런 행동이 몇 번인가 반복되었던 모양이다.

이번엔 불똥이 갑자기 나에게로 튀었다.
 
“난 무슨 죄인가?”

김프로는 내심 자신의 판단을 지지해 주지 않은 나에게 섭섭한 마음이다. 오히려 ‘아웃(out)’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나에 대한 감정이다.
그랬다. 경기 도중, 판단이 다른 상황에서 일단은 파트너였던 김프로의 판단을 지지하며, 지켜봤어야 했다. 사실 ‘인/아웃’ 시비가 발생하는 경우는 “아주 쪼금”의 차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은 정말 ‘휙~’ 지나간다. 코트 바닥에 흔적이 미약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주장할 수 있는 경우다.

나는 가급적 다툼을 회피하려는 편이다. 상대가 강하게 주장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인정해줘 버린다. 그런 내 모습에 김프로는 섭섭함을 느꼈었다.

나는 게임의 승패에 대해서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김프로는 게임의 ‘승’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박프로는 게임에서 이긴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코트 주변에서 경기를 지켜본 회원들에게 한마디 보탠다.
“너무 쉽게 이겨서 제대로 운동이 안 됐어.”
이런 모습이 또 한 번 김프로를 자극한다.

김프로는 한 번쯤 박프로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다.
과거에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나는 박프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김프로와 게임 파트너가 되는 것을 가급적 회피하고 싶다.
나는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운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
이런 나를 와이프는 승부욕이 없다고 질책한다.
나는 오늘도 애증의 테니스를 왜 계속해야 하는지 자문한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테니스 게임에 참가하고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만과 편견이 함께하는 스타트 라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