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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에 Jun 28. 2020

‘내기 게임’에 대한 불편한 시선

그들만의 리그

코드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조용한 성품의 최프로 표정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최프로는 이번 게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게임 순서를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는 좀 전에 김프로가 코트로 먼저 나가며 던진 부탁을 얼떨결에 받아들였다.

“최프로”
“미안하지만, 이번 게임 우리 네 명이 ‘내기 게임’ 하려는데... 양보 좀 해줘요.”
“네~~, 그러~시죠”

코트에서 함께 정한 룰에 따른 게임 순번 (기다린 순서) 은 최프로가 1순위였으나, 그는 양보했다.

회원 중에는 ‘내기 게임’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다.
이들의 목적은 기왕 시간 내어 운동하러 나왔으니, 좀 더 재미난 경기를 하기 위해서 이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게임하려는 사람들이다.
‘내기’는 게임에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참여하는 네 사람이 각자 소액을 걸고, 경기에서 이긴 팀이 상금을 갖는 방식인데, 이렇게 중간중간 두, 세 게임 정도 이들만의 경기를 한 후, 자연스럽게 회식 자리로 이어가려 한다.

오늘은 휴일이라, 한꺼번에 많은 분들이 몰렸다. 현재 코트에 있는 회원의 숫자가 12명 (4명씩 3개 팀)이나 된다. 이럴 경우, 코트가 한 면이다 보니, 최소 두 개의 팀이 다음 게임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가 되고, 시간적으로는 한 게임당 시간이 평균 삼십 분을 잡더라도, 최소 한 시간 이상의 대기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된다.

최프로는 오늘의 첫 게임을 마친 후, 두 번째 게임을 위해 최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그리고 양보한 이후라 다음 게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최소 삼십 분 이상 더 기다려야만 한다.

나 또한 오늘의 첫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선,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관람한다고는 하지만, 기다리는 한 시간은 솔직히 지루하다. 땀 흘리는 운동 하러 나온 시간이니, 나름 아깝다.
물론, 집에 머물렀다 하더라도 소파에 늘어진 자세로 TV나 시청하고 있겠지만...

사실, 이런 형식의 ‘내기 게임’과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다른 회원들의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고, 집행부에선 해결해보려 한다고 듣고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의 테니스 경력이 오래되었고, 또 나름 빵빵한 실력자들이라 제법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보다.

서로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테니스라는 게임은 특성상 네 명중 한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많이 날 경우에는 게임의 재미가 떨어진다. 그래서 좀 실력 있다는 친구들은 끼리끼리 게임을 즐기고 싶어 한다.


만일, 오늘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최프로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나도 비슷한 경우를 이전에 직면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의 행동은 ‘스스로, 먼저 나너서’ 양보했다.

“왜?”

과거에 이들과 함께 하는 게임에 들어갔을 때, 누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가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와이프는 이런 한심한 사람을 위해 거금을 들여 새벽 훈련소에 나를 다시 강제 투입시켰다.


나는 감사드린다.

나를 담금질할 수 있는 사랑하는 조련사에게.


“오늘 하루도, 함께해야 하는 애증의 삶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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