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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에 Jul 09. 2020

쌍방 과실

콘크리트 벽은 정직한 상대다

테니스 코치가 내 성격에 대해서 궁금한 듯이 물었다.

“혹시 성격이 매우 급하신 편인가요?”
“네?”

코치는 내가 레슨 중에 보여준 행동을 통해서 그리 유추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 결코 아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걸음걸이가 느린 편이다. 내 딴에는 기차 시간에 맞춰 열심히 걷고 있지만, 뒤에서 걸어왔던 이가 앞서 걷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다고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체력 검사장, ‘100미터 달리기’ 코스에서 나는 빠른 순위에 들었다. 그리고 밥을 빨리 먹는 편도 아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재촉하기보다는 잠시 기다려 주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코치는 성격이 급하냐고 묻는다.

코치는 나에게 ‘볼을 치는 동작에서는 급하게 서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 스스로는 서두른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단지 가만히 서서 날아오는 볼을 칠 수 없으니, 그 방향으로 재빨리 몸을 움직여서 치려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본 유명 프로선수들은 한결같이 볼을 향해 달려가며 볼을 받아치고 있었고, 나의 행동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테니스장에 가면, 혼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세워 놓은, 초록색의 ‘콘크리트 벽’이 있다. 초보시절에는 달리 나와 맞상대해줄 사람이 없기에 ‘콘크리트 벽’이 코치를 제외한 나의 유일한 상대역이었다. 나는 볼을 강하게만 치면 잘 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껏 뛰어가며 맞받아 친다. 몇 번은 성공할 수 있으나, 힘이 계속 들어간 상태로 볼을 대하면, 실수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런 나를 보고 코치는 성격이 급하냐고 물은 것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벽은 정직한 상대다.
내가 강하게 치면, 그도 강하게 맞받아 친다. 그리고 내가 서둘면, 그도 서둘러 돌려보낸다. 되돌아오는 볼의 강도는 내가 직전에 친 볼의 힘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 볼이 되돌아오는 각도 또한 내가 친 각도에 의해 결정된다.


개인의 감정에 따르면, ‘함께 플레이를 하면 좋은 사람’이 있고, 더러는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어떤 사건에 의해 그에 대한 감정이 불쾌해졌고, 이제는 ‘함께 플레이하기 싫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그 또한 비슷한 감정인 듯하다. 마주하게 되면, 가벼운 눈인사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굳이 함께 하지 않아도 전혀 아쉬움이 없다. 이러한 모드가 계속적으로 쌓여 간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벽치기’에 대한 팩트를 나는 최근에서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다.

콘크리트 벽은 정직한 상대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벽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일방적일 수는 없다. 불편한 감정을 주고받는 강도는 쌍방향이다.
 
테니스 코트장에는 이렇듯 사람들 간의 개인적 관계가 각양각색의 형태로 존재한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주변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회가 결국은 회원들 간의 다툼 끝에 모임을 해체하고, 테니스장도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다들 양식 있는 분들임에도 상충된 이견을 끝끝내 조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테니스장이라고 별다를 것 없더라”라고 푸념하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르는 늦은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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