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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Nov 24. 2021

50km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한라산 50km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첫 출전과 완주

달리기 위해 제주도로 

달리기를 목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는 처음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야자수를 보니 동남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숙소를 예약한 서귀포로 갔다. 호텔에 도착해서 배낭을 풀고 가까운 이마트에서 칫솔, 치약, 면도기를 샀다. 오랜만에 여행 온 것이라 들뜬 마음에 맥주도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달리기를 완주할 때까지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한라산으로 향했다. 대회전에 미리 코스에 일부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버스를 타고 영실탐방코스로 올라가서 반대편 돈내코로 내려왔다. 5시간 정도 걸렸다. 사진도 찍고 뛰고 걸으며 무리하지 않았다. 대회가 3일 뒤라서 지금 뛰어도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대회 당일 어떻게 뛸까 머릿속에서 그려봤다. 한라산 정상의 풍경도 마치 다른 나라 온 것 같이 이국적이다.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이 보인다. 이일, 삼일차에는 새벽에 일어나 한라산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가볍게 조깅했다. 내려올 때는 걸었는데 온통 귤밭이다. 돌담 밖으로 넘어온 귤을 하나 서리하려고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1시간 넘게 걸으면서 귤을 못 따고 시내로 들어왔다. 시내에도 귤나무가 있길래 길에서 하나 땄다. 뭐든지 첫발을 내디딜 때가 가장 두렵다. 다음날은 돌담을 넘어온 귤을 보자마자 내 것인 냥 땄다.

대회 전날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6시부터 누워있었는데 잠드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쯤 잠이 깼다. 마라톤을 뛰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수면이다. 누워서 더 자려고 애썼다. 다행인 것은 아랫배에 신호가 와서 배설 했다. 몸이 가벼워졌다. 한 시간쯤 얕은 잠을 더 자고 4시에 일어났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 소식은 없다. 가방과 해드랜턴, 옷가지를 한번 더 점검하고 경기장으로 나갔다.

출발지점인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 5시 반에 도착했다. 나는 J그룹이다. 알파벳 A에서 J까지 그룹이 있다. A는 순위권을 노리는 빠른 선수들이다. J는 완주가 목표인 사람들이다. A그룹은 6시에 출발하고 J그룹은 6시 20분에 출발한다. 나는 중간쯤 그룹에서 뛰고 싶었지만 J그룹이 됐고 바꿀 수 없었다. 



50km 한라산 달리기 
 혼자 참가했지만 어색하거나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6시에 선두그룹이 출발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다가 6시 20분에 출발한다. 울트라마라톤 첫 출전이다. 첫 번째 목표는 안전하게 완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다. 
 50여 명의 그룹 내에서 처음부터 거의 선두에서 달렸다. J그룹은 완주가 목표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두 천천히 뛰었기 때문이다. 곧장 25도쯤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5분 일찍 출발한 사람들도 길게 열지어 대부분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산인 ‘고근산’을 올라가 반대편으로 내려와서 약간의 평지를 뛰었다. CP1에 도달해서 기록을 보니 54분 걸렸다. 예상보다 빠르다. 물병에 스포츠드링크를 채우고, 사용하지 않은 해드랜턴은 가방에 집어넣는다. CP에서 제공하는 카스텔라를 하나 먹고, 하나 더 집어서 먹으면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컨디션이 좋다. 지치지 않았다. 날씨도 선선해서 달리기 좋다.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좁은 숲 속 길을 달리다 보니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앞에 사람들을 앞지르며 나아갔다. CP2에 도착하였다. CP2에 올 때까지 300명쯤은 앞지른 것 같다. 여기부터 한라산 정상까지는 계단이다. 간단히 먹고, 빠른 발걸음으로 한라산 정상으로 향한다. 제주도에 오기 전 한 달 동안 계단 오르기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계단이 있는 등산로는 자신이 있다. 관광객과 다른 선수들을 제치면서 올라갔다. 그러다가 1명이 날 제치고 올라간다. 경기를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날 앞질러 간 건 이 선수가 처음이다. 계단을 계속 저런 속도로 가다간 금방 지칠 테니 다시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다.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선수라는 걸 기억해 두자. 한라산에 다 오르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 선수는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고수였다. 

한라산 정상은 바람이 강하게 분다. 비 오기 직전의 날씨이다. 서귀포보다 기온이 10도 정도 낮은데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팔 부위가 얼얼하다. 가방을 벗고 옷을 꺼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뛴다. 돈내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앞에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리를 벗어났다. 나 홀로 뛴다. 준비해 온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리듬을 맞춰 현무암 돌밭을 총총 뛴다. 등산은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현무암 돌밭은 한라산에서 처음 본다. 내리막길에서는 대퇴사두근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근육이 땅기기 시작한다. 쥐가 나지 않길 바란다.


다치지 않기 위해 발아래를 계속 보며 좁은 보폭으로 한 시간 넘게 뛰고 있다. 힘들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젊은 외국인 남성이 날 앞질러 간다. 내리막길을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뛴다. 내 다리도 좀 길었으면 좋았을 걸. 그러나 나보다 일찍 출발한 사람일 테니 기록이 나보다 느릴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얼마 후 한국인 남자 한 명도 나를 앞질러 간다. 두 시간 정도는 계속 혼자였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한라산 등산코스 중 돈내코는 길이 좋지 않아서 관광객이 거의 없다. 맞은편에서 오는 외국인 커플이 박수를 쳐준다.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난다. 지쳤지만 CP3까지 뛴다. 걷지 않을 것이다. CP3에 도달해 보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작은 삼각김밥을 하나 먹고 물을 채우고 바로 뛴다. 32km를 통과했으니 앞으로 남은 거리는 20km이다. 진짜 달리기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오르막길이다. 날 앞질러 갔던 한국인 남성이 언덕 꼭대기에 보인다. 이제 내 목표는 저 선수를 따라잡는 것이다. 두 시간 전에는 오르막길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미 지쳤다. 앞에 사람들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며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내리막길에서 조심해서 뛰던 것과 달리, 앞을 보고 계속 뛰었다. 오르막길에서는 걸어도 평지에서는 절대 걷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한 시간 동안 오른쪽 발목이 일곱 번 정도 꺾였다. 왼쪽 발목은 한번 꺾였다. 발목 안정을 위한 테이핑을 안 한 것이 후회된다. 평소에도 길을 걷다가 오른발이 꺾이곤 했었다. 힘들지만 계속 뛰다 보니 두 명을 앞질렀고, CP4직전에 다시 남녀 선수 두 명까지 따라잡았다. 이 남자 선수는 두 시간 전쯤 내리막길에서 날 앞질러 갔던 한국인이다.


CP4가 마지막 CP이고 결승점까지는 새벽에 넘었던 ‘고근산’만 다시 넘어가면 된다.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함께 CP에 도착한 남녀선수 두 명은 물만 채우고 음식은 안 먹고 곧장 뛴다. 나도 아무것도 안 먹는 게 낫겠다. 이전 CP3에서 먹은 작은 김밥 때문에, 뛰면서 30분 동안 위가 너무 아팠었다. 한 시간만 참으면 된다.


 정말 지친 느낌이다. 앞에 남녀 선수 두 명을 좇아 뛰기 시작한다. 그들도 나만큼 지쳤을 것이다. 그들을 다시 앞질렀다. 계단을 오르는데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붓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뛰면서 뒤를 돌아본 적이 없었다. 계단 중간에 잠깐 멈춰 돌아보니 남자선수가  쫓아오며 에너지젤을 먹고 있다. 이런... 나는 위가 텅 비었다. 삼일은 굶은 것 같이 느껴진다. 겨우 계단을 다 올랐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만 3km 정도다. 결승점이 코앞이다. 정신력으로 뛰어야 한다. 그러나 내려가는 계단에서 뛸 수가 없다. 남자 두 명이 날 앞질러 간다. 파이팅!이라고 외치면서 날 제쳐간다. 응원이지만 얄밉다. 내가 지친 것이 눈에 보이나 보다. 시내로 들어가 내리막길을 뛰는데 여자 선수마저도 다시 날 앞질러 간다. 나보다 먼저 출발했으니 아직까진 내 기록이 더 빠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잡고 싶다. 도저히 뛸 수 없다. 몸에 글리코겐이 다 고갈되었다. 저혈당 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거린다. 주저앉고 싶다. 에너지젤을 준비해 왔어야 한다. 미리 알고 준비해야 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 나의 정신력 부족일까? 다시 한번 밀어붙여본다. 뛸 수 없다.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된 듯하다. 여자선수마저도 점점 멀어져 간다. 문이 열린 식당을 지나다 보니, 들어가서 물 한잔과 먹을 것 좀 얻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거의 걸으며 서귀포경기장 앞에 도달했다. 교통정리를 해주는 자원봉사자 분들과 경찰이 나를 보고 파이팅을 외쳐준다. 마지막 100m는 뛰어서 결승선을 통과한다.


첫 울트라마라 대회에 출전하고 완주하다.

완주 메달을 건네준다. 묵직하고 빛나는 쇳덩이이다. 결승선 뒤에 사람들이 앉아 있길래 나도 바닥에 주저앉는다. 잠깐 쉬다 일어나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천막 쪽으로 간다. 샌드위치와 물을 준다. 그 앞에서 다시 주저앉아 샌드위치를 먹어 치운다. 이제야 좀 살만하다. 
나의 기록을 확인해 보니 7시간 22분이다. 전체 등수는 46등이다. 첫 번째 대회인데 상위권 기록이다. 마지막에 에너지젤만 먹었어도 43등쯤 했을 것 같다. 아무렴 어떻나. 나는 50km를 처음으로 완주했다.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사람들에게 나의 기록을 보낸다. 완주 기념품으로 스포츠 더플백을 받고, 짐을 챙긴다. 편의점에 가서 하이네켄 710ml 한 캔과 감자칩 하나를 사서 일단 숙소로 돌아간다. 지난 5일 동안 오늘을 위해 참았던 맥주이다.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기가 막히게 시원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에서는 소박한 승리의 맛이 난다.



극단을 향해 달리는 경영지도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un_suffer_dis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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