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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Dec 20. 2021

혼자 달리기와 외로움

스포츠의 주요 기능은 사교이다.

20대 후반에 테니스를 6개월간 배웠다. 첫 직장생활을 일본에서 하며 취미다운 취미를 가져보겠다고 선택한 것이 테니스였다. 일본 현지인들과 사귀기 쉽다는 목적도 있었다. 테니스는 코트와 라켓이 있어야 하고 복장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당시 라켓에 40만 원을 투자했고 아디다스 테니스복을 입었다. 테니스를 치고 난 후 일본 여성들과 짧게 대화를 하며 일본어를 써보는 기회를 가졌다. 사투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는 코치의 일본어에 대해 흉을 보기도 했었다.

테니스는 점수를 0(러브) 15, 30, 45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헤아린다. 고급 스포츠 이미지가 있다. 사람들은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을 선택한다. 스포츠에 주 기능 중 하나는 사교이다.


달리기는 테니스처럼 상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다. 혼자 달린다. 내가 주로 달리는 산책로는 한 바퀴 돌면 2.2km이다. 산책로에는 이어폰을 끼고 혼자 걷는 사람, 중년 커플, 젊은 커플들이 있다. 산책로를 자주 뛰다 보니 눈에 익는 사람들이 생겼다. 레깅스를 입고 하얀색 개와 함께 걷는 늘씬한 여성, ROK(대한민국 육군) 점퍼를 입고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젊은 남성, 머리부터 발끝까지 언더아머 브랜드 옷을 입고 달리는 남성이 눈에 띈다. 나는 항상 모자를 쓰고 이어폰을 끼고 가방을 메고 달리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날 알아볼는지 모른다..


무리 지어 등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등산 후 막걸리를 마시고 음식을 즐기는데 더 초점을 둔다. 노년층에서 더 그러한 것 같다. 러닝 크루도 함께 달린 후에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러닝 크루에서 혹시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참여하는 젊은 남녀도 있을 법하다. 나는 그날  몸 상태에 따라 언덕길을 오르기도 하고 가끔 빨리 달려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면 페이스 조절이 어렵다. 같이 달리면 상대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율성을 잃는다.  러닝 크루에 참여하면 타인과의 교류는 늘어날 것이지만 달리기에 대한 자율성은 떨어진다.


혼자 생활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달리기 하는 중년 남성을 사람들은 초라하고 꾀죄죄하게 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말수가 적었다. 친구는 별로 없었다. 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들이 발각될까 봐 두려웠다. 2년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며 연락처를 차단하고 지웠다. 내 정신상태는 만신창이였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잘못된 관계를 진즉에 끝내지 못했다. 한동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분하고 우울했다. 2년이 지난 지금 혼자인 것이 편해졌다. 여자 친구가 있을 때 보다 지금 외로움을 덜 느낀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나다워진다. 이런 나의 정신상태가 정상인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정상인척 하는 것도 피곤하다.


결혼생활을 20년 한 부부, 로빈 윌리암스처럼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유명인, 사람들이 북적이는 파티 현장에서 있는 사람들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에 조상은 수렵 채집으로 몸을 지탱할 열량을 얻었다. 혼자보다 집단으로 함께 사냥을 할 때 성공확률이 더 높다. 내가 아프거나 병들어 취약해졌을 때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서로 도와주며 살 수 있다. 공동체는 안전망을 제공한다. 이런 생활은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진화를 거치며 DNA에 각인되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으면 뇌는 생존을 위해 고통을 느끼도록 한다.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떤 책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 달리기에 관심이 생겼을 때 카카오톡에서 단톡방을 검색했다. 수십 개의 달리기 동호회 채팅방이 존재한다. 지역별 연령별로 동호회를 구성한다. 동호회보다는 러닝 크루라는 말을 쓴다는 것도 알았다. 마라톤 동호회는 아재 느낌이고 러닝 크루는 청년 느낌이 난다. 가입조건에 나이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다. 러닝 크루는 20-30세이거나 39세 이하와 같은 나이 제한이 표시되어 있다. 나는 러닝 크루와 마라톤 동호회의 경계에 낀 애매한 나이이다. 조건 없는 단톡방을 하나 찾아서 1년째 활동 중이다. 연령대는 10~50대이다. 방에 주류는 40대이다. 달리기 기록이 가장 좋은 나잇대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 이 연령대가 수다도 많이 떤다. 자신의 달리기 기록을 인증하면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얘기해 준다. 


같은 지역에 있는 러닝크루에도 몇 번 나갔지만 이제는 안나간다. 매번 시간을 맞추고 단체로 하는 운동이 어쩐지 맞지 않았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도 변함이 없다. 달리기를 매개체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것은 소중하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것도 어떤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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