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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Dec 08. 2021

술을 좋아하는 러너

달려 볼까?

몇 년 전 요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요가를 배우는 것에 자긍심이 있었다. 요가를 특기라고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내가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운동한다면서 술을 마셔도 되냐고 물어본다. 운동을 진지하게 하는 것이 맞냐고 묻는 듯하다.  


지금은 달리기가 나의 주 운동이 되었다. 요가는 달리기를 못하는 날 보강운동으로 한다. 그리고 술도 마시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마시는 술이지만 가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다. 달리기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운동보다 격렬하고 칼로리 소모가 높다. 따라서 달리기를 한 후에 몸의 회복이 중요하다. 상식인 것처럼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운동능력이나 그 효과를 저해한다.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고, 간에 부담을 주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근육의 회복을 방해한다.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도 술을 마시는지 사례연구를 해봤다. 유튜브에서 나에게 운동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 4명을 조사했다. 그들이 술을 마시는지 증거를 찾으려고 검색을 많이 했다. 


1. 데이비드 고긴스 (네이비씰 군인 출신)

데이비드 고긴스가 쓴 책 'Can't hurt me'를 재미있게 읽었다. 네이비씰은 훈련 강도가 가장 강한 군대로 훈련 도중 지속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절반 이상은 중도 탈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을 보면 그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많다. 강해져야 한다며 거친 욕설을 섞어가며 동기부여 연설를 한다. 

그는 술과 마약은 당연히 안 한다고 당한다. 술은 맛을 본 적만 있다고 한다. 진정한 스파르타식 군인이다. 존경스럽지만 나와는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 같다.


2. 코트니 드월터(여성 최고 울트라마라토너)

코트니 드월터는 240마일(386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단 21분 동안 잠을 자고 달렸다. 남자 선수들을 제치고 전체 1등을 했다.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는데 이제는 전업 마라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코트니 드월터는 경기가 끝나면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한다. 감자칩도 좋아한다. 경기 후에 하는 인터뷰를 보면 코트니 드월터는 맥주병을 들고 있다. 잘 웃는 유쾌한 선수이다. 울트라 마라톤에서 1등 하려면 강한 체력만큼이나 괴물 같은 정신력이 있어야 하는데 코트니 드월터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3. 몰리 사이델(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몰리 사이델 선수는 도쿄 마라톤이 3번째 마라톤이었는데 동메달을 땄다. 동메달을 딴 직후 울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매우 지쳤다. 제발 나를 위해 맥주를 마셔달라(please drink beer for me)". 몰리 사이델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유명한 선수였던 거 같다. 그런 선수가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 도쿄 올림픽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마라톤을 뛰어야 했다. 몰리 사이델은 마라톤을 달리면서 끝나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을 상상하며 달린 듯 하다. 


4. 데즈 린덴(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데즈 린덴 선수는 미국 대표로 올림픽에 2번 출전했다. 2018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우승한 것은 33년 만이었다. 그날 그녀는 신발에 술을 받아 마셨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만 신발에 폭탄주 말아 먹는것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데 술집에서 노는 모습이 스토리에 자주 올라온다. 


내가 아는 최고의 선수들 4명 중 3명이 술을 마신다. 3명 다 여자선수들이고 좋아하는 술은 맥주이다. 나도 맥주를 좋아한다. 아직까지 내 간이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달리기 실력도 느리지만 발전하고 있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선수들은 비인간적으로 달린다. 너무 빠르고, 너무 오랫동안, 너무 멀리 달린다. 진실은 언제나 극단에 있다. 엘리트 선수들은 진실에 가까이 갔을 것이다. 이 선수들처럼 나도 땀 흘리며 달린 날에는 맥주 한잔 마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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