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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Jan 19. 2022

게으른 게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우울증과 달리기

 잠이 깼다. 손을 뻗어서 아이폰을 집어 든다. 유튜브에 들어간다. 어떤 주제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어제 들었던 것을 또 틀어놓고 눈을 감는다. 오늘 뭐라도 하려면 잠을 더 자서 피곤함을 없애야 한다. 잠에 들지 못하고 누워있는다. 1시간쯤 누워 있다가 결국에는 이불 밖으로 나온다. 방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커튼을 열어젖히니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은 어제도 느꼈던 것이다. 어제도 어떻게든 살았으니 오늘도 하다 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나 자신에 죄책감을 느낀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다. 다행인 것은 카카오톡 단톡방이 생겼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단톡방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1년이 넘게 활동 중인 단톡방에서 사람들은 나의 정체를 모른다. 나는 내 사생활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울증이었다.

 사람들은 우울증이 기분이 계속 나쁜 상태인 줄 안다. 흔한 우울증에 진짜 증상은 무기력함이다. 매일 피곤하고 몸에 활력 수준이 낮고 즐거움이 없다. 나는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금욕주의자이기도 하다. 쾌락은 잠깐이고 쾌락은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좋지만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쾌락은 나쁜 것이다. 나는 쾌락 불감증이 있다. 염세주의자이다. 원래 그랬지만 요즘 부쩍 그 정도가 심해졌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끼고 있다. 

평생 우울증 앓아 왔다. 중학교 때까지는 우울증을 앓았던 거 같지 않다. 고등학생 2학년 때 엄마가 불행하게 돌아가신 때부터 극심해진 듯하다. 그때는 내가 우울증인걸 몰랐다. 그냥 내향적인 성격으로만 알았고 바꾸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늘 도망쳤다. 직장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도망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인은 우울증이지 않았나 싶다. 심리학 강의를 듣다 보니 회피성 인격 장애라는 것도 있다. '회피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거절, 비판, 창피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러한 반응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한다'라고 한다. 나의 뇌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몸의 화학성분에 무엇인가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유전일 수도 있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가 몇 년 전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은근히 기뻤다. 나의 모든 불행은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아버지의 삶에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고 폭력성을 드러냈다.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다. 폐암이 먼저 발견되어 술 담배를 끊지 않았다면 간암도 걸렸을 것이다. 절망적으로 사셨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공격을 알지 못했다. 가정환경이 폭력적이면 그 자식들도 폭력적으로 된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폭력이 싫었더라도 쉽게 말해 보고 배운 것이 폭력인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해결책은 폭력이 된다. 내 안에 폭력성이 있다. 술도 많이 마신다. 멋진 음주가가 되고 싶다는 망상을 한다. 이 모든 게 아버지 탓인지, 세상 탓인지, 내 탓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봤지만 답은 없다. 우울증, 불안장애, 회피성 인격 장애. 정신과 가면 이 정도 진단은 나올 것 같다. 


희생자 역할?

나는 모든 것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희생자인 양 행동하는데 익숙하다. 희생자 역할은 쉽다. 자신을 희생자로 바라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다.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을 수 있다. 희생자 인척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자신의 어머니는 4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못 봤다고 하며, 니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어머니가 있었으니 행복한 거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을 희생자로 보면 다른 사람을 공격할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희생자가 된다. 그리고 증오하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나 자신을 해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스트레스 호르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트레스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작업 효율이 낮아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체내의 코르티솔 분비량이 높다. 코르티솔은 인지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직접적인 손상을 준다. 우울증에 원인은 많겠지만 코르티솔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비지트라는 경제학자가 말했다. '희망을 잃고 곤경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기 어렵다.' 코르티솔이 몸에 가득한 사람은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 밖에서 보면 게으른 사람으로 보이지만 당사자는 마음에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자가 치유를 모색하다.

정신과에 가본 적은 없다.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한 적도 없다. 나 자신이 나아지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듯하다. 아무런 근거 없이 무한 긍정을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무한 긍정은 더 큰 분노와 무기력으로 바뀐다.

명상을 했고 불교에 의지해 보려고 했었다. 명상은 메타인지를 일상화시켜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몸에 호르몬이 바뀐다. 뇌의 근육을 강화한다. 작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명상은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었다. 두 가지를 다 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명상한다고 앉아 있기는 쉽지만 집중은 어렵다. 명상은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활동이다.

달리기가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증거는 많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신체활동이 우울증을 완화한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무산소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이 우울증 치료에 더 효과가 좋다. 실제로 밖에 나가서 30분만 뛰고 들어와도 즉각적으로 기분이 나아진다. 운동을 하면 코르티솔의 수치가 낮아진다. 몸이 화학적으로 균형을 찾게 도와준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작년에 공부할 때는 하루 1시간 정도 했던 운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공부에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줬다. 공부가 끝나고 자유로워지자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이 심해졌다. 달리기가 내가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달리기를 하면 용기가 생기고 못하는 날에는 죄책감이 생긴다. 명상도 하고 달리기도 해야 한다. 컴퓨터를 끄고 밖에 나가서 뛰어야겠다. 뛰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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