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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Feb 20. 2022

달리기 번아웃

러너라는 자존심만 버리면

 오늘은 달리고 싶다. 기온은 영상 3도이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야외 활동하기 좋은 날이다. 어젯밤 술을 마시고 잤지만 몸 상태는 괜찮게 느껴진다. 불안한 기분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높았다. 운동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운동량을 급격히 늘렸다. 7일 연속으로 운동을 완전히 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월 초에 트레일 러닝 대회를 완주하고 12월에 운동량은 정점에 올랐었다. 하루 평균 10km 이상 달리고 푸시업과 플랭크와 같은 맨몸 운동을 했었다. 순 운동시간이 2 시간 이상이었다. 1월 달부터 런태기가 왔음을 느꼈다. 억지로 매일 달리기를 하러 나갔고 달리는 거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2월이 되자 달리기는 것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겨우 달리러 나갔다. 잠을 충분히 잤고 영양섭취도 좋았다. 늘 그렇듯이 일단 달리러 나가면 어떻게든 5km는 뛰었고, 조금만 더 뛰자 하다 보면 10km를 넘겼다.

 일주일 전 일부러 천천히 달렸는데 5분쯤 달리자 숨을 쉬기 어려웠다. 터벅터벅 걸어서 마트에 갔다.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두어 달 전만 해도 이 정도 페이스로는 21km도 뛸 수 있었다. 너무 힘들 때는 속도를 줄이고 참고 달렸었다. 그날은 온몸이 달리는 것에 저항하는 느낌이었다. 몸에 부상이 없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쉬었다. 하루를 쉬고 이틀을 쉬다 보니 어느새 7일이나 쉬었다. 


번아웃과 지속가능성

 달리기는 동기가 부족한 것 같아 대회를 찾아봤다. 대부분이 버추얼 러닝이다. 버추얼 러닝에 돈을 주고 참가해도 어차피 혼자 달리기는 것이 때문에 대회 느낌이 나지 않는다. 오프라인 대회는 참가 신청을 해도 대회 한 달 전에 취소되기 일쑤이다. 결국 신청한 대회는 없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건강도 좋아질 겸 재미가 목표였다. 1년만 뛰면 나 자신을 이겨내는 멋진 마라토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시간이 많아졌고 운동이 하루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달리기 페이스만 놓고 보면 작년 초와 별 차이가 없다.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내 한계를 잘 모르고 높은 목표치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높은 강도로 하는 운동은 계속하기 어렵다. 일주일에 하루씩 휴식이 필요해왔지만 그렇게 4달을 운동했더니 번아웃이 왔다. 딱 집어 어디가 아프거나 힘들지 않다. 힘들어서 달릴 수가 없었다. 달리기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계속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 목표도 실현 가능하도록 현실화해야 한다. 강도를 낮추고 재미를 찾아야 한다.


느릴 지언정 걷지는 않았다?

 산책로에서 뛰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는다. 새벽에 나가면 60대 이상이 많다. 저녁 때는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걷는다. 뛰는 사람은 여름에 꽤 있었지만 겨울이 되자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걷는 것도 운동 효과가 좋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걷기는 달리기보다 쉽지만 오래할 수 있고 총 에너지 소모량은 달리기보다 많아진다. 걷는 것은 관절에 주는 부담이 덜하고 지속가능성은 더 높다. 강도를 높이고 싶다면 둘레길을 걷거나 등산을 가면 된다. 러너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느릴 지언정 걷지는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 말인듯 하다. 걸으면 러너로서의 근성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러너라는 자존심을 버리면 걷기 운동도 즐겁게 할 수 있다. 즐거우면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걷기 운동효과 링크


7일간의 휴식과 트레일 러닝

 검은 타이즈를 입고 러닝백을 둘러맸다. 둘레길을 뛰기로 했다. 트레일 러닝이다. 트레일 러닝은 로드 러닝보다 심리적 부담이 덜하다. 로드 러닝은 달리다 걸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트레일 러닝은 계속 뛸 수 없다. 둘레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나온다. 오르막길에서는 뛸 때까지 뛰다가 걷는다. 일종의 인터벌 훈련이 되기도 한다. 걷는 동안은 에너지가 충전이 된다.  계단도 오르고 나뭇잎을 밟으며 뛰기도 하고 심한 내리막길에서는 걸어야 한다. 트레일 러닝은 로드 러닝보다 덜 지루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니 컨디션이 좋아서 한 바퀴 반 돌았다. 2시간 동안 뛰걷뛰를 했다. 날만 어두워지지 않았으면 더 뛰었을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 푸시업도 200개 했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운동이었다. 너무 밀어붙이면 오래가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재미를 찾아야 오래 한다.

둘레길 트레일 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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