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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Mar 13. 2022

만만한 달리기 대회는 없다

원주시 트레일 러닝 대회

 봄이 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달리기 하기 좋아졌다.  2월에 몸이 계속 아파서 달리기를 많이 쉬었는데 3월이 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달리기 한지 만 1년이 지났다.

 작년에는 주로 산책로에서 뛰었다. 산책로는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반환해서 다시 올라오게 된다. 길이 거의 평평하고 직선이라 뛰기 쉽다. 산책로에 단점은 계속 뛰다 보면 내가 얼마나 뛰었는지 정확하게 계산이 된다는 점이다. 뛰어 내려가면 1.1km이고 다시 올라오면 1.1km이다. 그래서 10km를 뛰려면 몇 바퀴를 돌아야 되는지 알 수 있다. 30분쯤 뛰고 나면 수학을  시작한다. <저기 밑에 다리까지 뛰면 6.6km이다.  10km 뛰려면 아직도 2.45바퀴를 더 뛰어야 한다. 제길. 힘들어> 이런 식이다. 계산하기 시작하면 힘이 빠진다. 머릿속 계산을 줄이기 위해 코스를 바꿔 이리저리 뛰는 방법을 쓰게 되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언덕을 뛰어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좀 편하게 내려오고 다리도 건너가 보고 골목길도 들어가 본다. 이러면 덜 지루하고 오래 달릴 수 있다. 이제는 달리러 나가면 대부분 10km는 넘게 뛴다.


 지난 화요일에도 이리저리 뛰다가 마지막에는 산책로를 한 바퀴 뛰고 마무리했다. 다 뛰고 산책로 끝에 있는 다리에 붙은 현수막을 발견했다. 지역 달리기 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둘레길 트레일 러닝 대회였다. 아무런 준비도 안 했고 대회는 4일 뒤였지만 바로 전화해서 신청했다. 동네 대회라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둘레길은 내가 여러 번 돌아봤기 때문에 잘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료인 줄 알았는데 참가비가 15,000원 있었다. 티셔츠를 상품으로 준다고 했다.


 보통 마라톤 대회 훈련은 일주일 전에 끝낸다. 훈련의 정점은 이 주일 전이고 차츰 훈련을 줄여서 대회 2~3일 전에는 완전히 쉰다. 이유는 몸에 근육이 회복하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이다. 대회를 3일 앞두고 뛰는 것은 보통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나는 수요일에 둘레길을 한 바퀴 뛰었다. 이번 대회는 10km라 금방 끝날 것이기 때문에 몸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비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레길을 사전답사해보고 싶었다. 이틀은 쉬었다.


 부담 없이 뛰어보자고 신청한 대회였지만 하루 전날이 되자 약간 긴장 되었다. 달리기는 잠을 잘 자야 하기 때문에 11시부터 누웠다. 다음날 10시 출발이라서 8시 전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운동을 안 했기 때문인지 잠을 못 자고 뒤 척졌다. 스마트폰으로 오디오북을 들어보기도 하고 심호흡도 하다가 1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 결국 6시간도 못 잤다. 평소 같으면 6시간 잔 날은 달리기를 안 하거나 짧게 한다. 참가비 15,000원을 날리기는 아까워서 허둥지둥 밥을 챙겨 먹고 대회장에 갔다. 9시 반에 갔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전화 문의를 해보려고 문자를 찾아보니 대회 일정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로 바뀌어있었다. 나만 바뀐 걸 몰랐다. 대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탓에 문자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 밥을 먹고 누워 있었다. 잠은 안 왔다.


12시 반에 대회장에 다시 가보니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사회자 말에 따르면 290여 명이나 참가했다고 한다. 달리기 동호회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중년이지만 중년 남성들의 마라톤에 대한 애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러닝 크루가 있다는 걸 알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혼자 온 사람은 나 말고도 몇몇 보였지만 러닝 크루 가입하고 같이 대회 다니는 것도 재밌어 보였다. 

 1시가 되자 날이 뜨거웠다. 갑자기 기온이 16도까지 올랐다. 달리기 대회는 시작되었다. 나는 두 번째 줄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그룹이 떼 지어 달려 나갔다. 몇 명인가 세어보니 13명이었다. 저 중에 몇 명은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시작한 지 3분 만에 계단이 나왔다. 여기서 3명쯤 앞질렀다. 선두그룹은 금방 무리가 깨지고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평소보다도 느린듯한 속도로 달렸다. 그럼에도 힘들었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달리면서 한 명씩 앞지르려는 계획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갔다. 15분쯤 달리자 순위가 바뀌지 않았다. 나를 앞지르는 사람도 없었고 내 앞에 보이는 사람도 앞지를 수 없었다. 날도 덥고 갈증도 났다. 1시간 정도면 끝난 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물을 많이 안 먹었는 게 후회됐다. 30분쯤 달리자 내 뒤에서 쫓아오던 여자 선수 한 명이 날 앞질렀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 앞에 대략 9명 있었는데 내가 여자한테도 뒤쳐진다는 게 싫었다. 다시 앞지르려고 해도 점점 멀어져 갔다. 지난 1년간 나름 열심히 달렸지만 난 여전히  런린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반쯤 달렸을 때 다행히 물이 있었다. 한 컵 들이키고 달렸다. 계속 힘들었다. 제주대회에서 50km 달릴 때보다 더 힘든 느낌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유 없이 대상도 없이 화가 났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대회 목적지를 100미터쯤 앞두고 두 명을 앞질렀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여자는 나보다 일찍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몇 등이냐고 물어봤다. 3등까지만 체크하기 때문에 모른단다. 동네 대회라 기록도 알 수도 없었다. 9등 한 것으로 추정한다. 기념품으로 레스토랑 1만 원 식사권, 타월, 티셔츠, 메달을 받았다. 이 정도면 참가비 15,000원은 회수했다.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다가 나는 마트로 갔다.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서 터벅터벅 걸어 집에 돌아왔다. 이주일만에 마시는 맥주인데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컨디션 관리를 잘했으면 좀 더 잘 뛰었을 거라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땀 흘리고 나니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내 달리기 실력을 더 객관적으로 알게 됐다. 사람들은 자기의 실제 능력보다 자신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달리기 고수가 되었다고 계속 착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만한 달리기 대회는 없다. 대회에서 후회가 남지 않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하고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완주 메달과 기념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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