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귀국했다. 그 전에는 해외에서 10년 넘게 이런저런 일을 했다. 사기업, 정부기관, 비정부기관으로 직장을 옮겨 다녔다. 한 때는 이런 유목 생활에 의미를 부여했다.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길을 개척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착하고 싶었다.
귀국했지만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신입은 아닌데 특별히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었다. 눈을 낮춰 구직활동을 했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몇 번 면접을 봤지만 탈락했다. 자괴감을 느꼈다. 하찮은 질문들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자격증 따기를 선택했다. 공부를 많이 했다. 자격증을 닥치는 대로 땄다.
내가 지난 3년간 취득한 자격증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모두 국가공인자격증이다.
1. 경영
경영지도사(마케팅)
사회조사분석사 2급
스포츠경영관리사
2. 법
행정사(외국어번역행정사 영어)
가맹거래사
3. 데이터분석 & 정보통신
정보처리기사
빅데이터분석기사
sql개발자
데이터분석준전문가
4. 스포츠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보디빌딩)
5. 환경
온실가스관리기사
경영지도사, 행정사, 가맹거래사는 국가전문자격증이다. 이 자격증들은 무자격자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법으로 규제한다. 자격시험 통과는 전문성을 검증하는 기능이 있다. 자격증을 따면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신용이 올라간다. 자격증 취득이 구직에 도움이 되면 좋고 사무실을 열 수 있으면 더 좋다.
기술 자격증들은 당장 이점이 생기지는 않는다. 빅데이터분석기사, 정보처리기사, 온실가스관리기사는 취득을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초년생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기 위해 자격증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이라면 기사 자격증 취득만으로는 구직 시장에서 돋보이기 어렵다. 생활스포츠지도사는 체력단련장업을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다. 당장 쓸모는 없다. 그러나 건강관리를 위해 요가와 달리기를 해온 나는 이 자격증에 애정이 간다.
여러 분야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별로 없다. 최고의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거나, 한 분야의 자격증만 취득하는 게 효율성이 좋다. 자격증 취득으로 각종 분야에 전문 지식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해 전보다 낫게 느낀다. 무엇이든 배우고 학습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생겼다.
창업을 한지 만 1년이 지났다. 주업종은 경영 컨설팅업이고, 부업종은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이다. 1년간 어플리케이션 앱을 개발하여 공개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영 컨설팅에 뛰어 들었다. 컨설팅은 지식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많이 알아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마케팅전략을 주력 서비스로 개발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문위원으로 등록되었다. 전문위원 자격으로 컨설팅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창업진흥원에 심사위원 인력풀에 선정되었다. 자격증 덕분에 몇 개 기관에 위촉위원이 되었고 사업 참여에 문턱을 넘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가 되려는 노력이다. 사람들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고, 남편이 되고, 부모가 되고, 사장이 되려고 한평생 발버둥친다.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은 자기 회사에서 준 명함을 들이대며 '나'라고 설명하기 쉽다. 자격증 덕분에 나는 '경영지도사'이고 '행정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인 '나'는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단정하지 못했으면 한다. 내가 누구인지는 세상이 나에게 말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내일 나는 오늘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걸 먹고 다른 방법으로 달릴 것이다. 나를 찾아야 한다. 거듭해서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새로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