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집고 들어오는 빛의 커튼
위를 날아다니는 먼지들
숨 죽이고 바닥이 되려는 벌레들
다 무시하고 작업을 시작하자
알량한 자존심처럼 생긴 의자
상태 좋은 거는 옮기고 나머지는 버려라
자존감을 뭉쳐 놓은 축구 공들
우리 이거 많잖아
빠진 애들은 터트려서 일반쓰레기로
유년기를 닮은 탁구 다이
하...
이걸 어디서 쓰냐
일단 구석에 박아봐
사랑을 연상하는 어벙벙한 테이블
이걸 아직도 안 가져갔냐
알아서 챙겨가
바뀌어도 되잖아, 똑같아
행복을 분리한 침대 조각
열망을 담았던 먼지 덮인 작은 책장
추억 냄새로 가득한 서랍 화장대
질투로 동여맨 러닝화들
괴로움을 위시하는 깃발
끝났다!
청소하고 마무리해라
벌레처럼 숨어있던 감정들
문이 닫히자마자 내보인 얼굴들
다른 색깔의 똑같이 복잡한 표정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어떤 마음은 제대로 청소를 시작한다
어떤 마음은 정리된 가구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부서진 의자
자존심
팡 터진 축구공
자존감
바닥에 쓰러져 누운 유년기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랑
널브러져 짝을 못 맞추는 행복
부딪혀 금이 간 열망
깨진 거울과 추억
지저분한 끈과 질투
아래를 향해 휘어 있는 괴로움
어떤 마음은 어질러진 방을 보고 청소를 그만뒀다
어떤 마음은 부수는 것에 동조했고
또 어떤 마음은 그래도 꿋꿋이 정리한다
몇 차례 동족상잔과 무의미한 반복
다들 지쳐 다시 숨었을 때
작업이 끝났다
같이 쓰는 소중한 뇌
계속 관리하며 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