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멍청한 딸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내게 있어서 '좋은 사람'의 이미지였다.
아빠로써 좋은 사람이라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정말 이상적인 '어른'의 이미지였다. 침착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편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절대 쉬워 보이지 않는. 내게 있어서 우리 아빠는 딱 이랬다. '아빠'라는 단어 보다는 존경할 만한 진짜 '어른'의 느낌 말이다.
얼마 전 나만 살 집을 아빠와 구하러 다녔다. 아빠와 함께 집을 구하면서 아빠가 원하는 '안전한 곳'이라는 것과 내가 원하는 '방이 넓어야 함'을 만족시키는 집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결국 맘에 드는 집을 찾아 이사를 끝냈다. 이사를 끝내고 엄마가 말을 꺼냈다. 아빠가 서울 와서 처음 살았던 집 기억 나냐고.
6년 전,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서울에 올라온 아빠와 나는 따로 살았다. 내가 1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아빠는 집을 구했었다. 엄마와 함께 들렀던 그 집은 처참했다. 네 식구 들어가면 꽉 차는 한 칸 짜리 방에, 녹이 슨 싱크대와 창틀, 화장실도 더러웠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갖춰있던 식기도 썩 나빠 보였다.
나는 이제 와서야 아빠한테 물어봤다. '왜 그런 집에서 살았어?' 아빠의 대답은 간단했다. '(가격이)쌌으니까.'
사실 아빠가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셔서 그렇지, 그리고 내가 가족들에게 받는 것에 익숙해서 그렇지, 아빠는 언제나 다정했다. 아빠는 내 부탁이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차를 태워다 줬고 갑작스레 내가 '아빠 저녁 사줘, 신촌으로 와줘.'하면 달려오셨다. 돈 없다고 징징 거리면 '얼마 줄까'하며 지갑을 꺼내시고.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걸 다 해줬다. 내 부탁에 아빠는 거절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난 잘 몰랐다. 아빠가 나에게 어떻게 해 주시는지. 정말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이사를 하고 집이 너무 좋다고 느끼다 보니 아빠가 살던 집과 내가 살 집이 오버랩 됐다. 본인 살 집은 그저 싸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고, 딸의 집은 그렇게 고민해서 고르는 우리 아빠. 아빠를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다. 우리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다. 그리고 나는 참 생각 없는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