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by 이주희

“엄마!”

두 아이 손을 잡고 열차를 타려면 손에 드는 짐이 불편하니 각자 매는 가방에 짐을 챙겨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두 아이가 널찍한 우드락에 그린 참치와 진짜 김이 붙은 선물세트를 대뜸 내민다.

“이거 외할아버지 드리려고 미술 선생님이랑 만들었어.”

오자마자 두 녀석 다 내 손을 만지기 바쁘다. 만났을 때 많이 안아주라는 상담 선생님의 조언이 기억나 가슴 가득 둘을 번갈아 안아준다.

“엄마한테 좋은 냄새난다.”

오늘은 아침 일찍 부랴부랴 나오느라 향수도 뿌리지 않았는데, 무슨 냄새일까? 아이들에겐 내 냄새가 ‘엄마 냄새’일까. 2주 동안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혹시 나만 너희들이 보고 싶은 건 아니었겠지.


“잘 다녀와. 내일 봐.”

가뜩이나 원래도 흰머리가 많던 전남편 머리가 그새 더 샌 것 같다. 얼굴도.

“아빠, 우리 보고 싶다고 울지 마.”

부녀 사이가 좋은 걸 확인하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래도 이런 대화가 눈꼴 신 건 어쩔 수 없다.


열차가 지연되어 실내 대기실에 있다 14번 승강장으로 움직였다. 동대구역은 꽤 오래된 역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이동하는 통로가 많이 좁다. 행여나 아이가 위험해질까 노란 선 밖에로 나가지 않게 주의를 준다.

“여기서 기다리자.”

내 손은 가짜 선물세트 두 개 겹친 걸 겨드랑이에 낀 채 쌍둥이의 손을 잡고 움직이느라 분주하다.

“엄마, 우리 자리 어디야?”

KTX와 SRT 설 예매일이 차이가 나는지 모르고 있다 SRT 예매 오픈 날 부랴부랴 KTX에 남은 자리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표는 구했지만 자리가 역방향이다. 기차가 출발하자 세희가 묻는다.

“엄마, 기차가 왜 거꾸로 가?”


기차가 움직이자 첫째는 엄마 옆에 눕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반면에 지희는 아무 말 없이 처음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려 창밖만 보고 있다.

세희의 통통한 손을 만지다 보니,

‘아, 이 손은 눈 감고 만져도 세희인 줄 알겠다.’

는 생각이 든다. 2주마다 돌아오는 내가 ‘엄마’라는 느낌이다. 봉긋한 이마도 하얀 피부도 ‘세희’다. 괜히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다 보니 콧물도 난다. 이럴 때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아기 때 이 손에 있던 몽고반점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다음 날 아침 양치를 하며

“근데 세희 손에 있던 파란 점 어디 갔어?”

하고 물어봤더니

“이제 아이라서 없어.”

한다. 마치 자신이 아기에서 성장한 아이란 걸 안다는 듯이.


창가 쪽 세 자리를 예매한 터라 2번 좌석에서 세희를 재운다. 아기 때처럼 계속 엉덩이를 토닥토닥했더니

“엄마, 이제 그만해.”

한다. 나는 멋쩍게

“좋아서 그랬어.”

라고 대답했다.

엉덩이는 너무 아기 같은가 싶어 그만두고 갈 곳을 잃은 손으로 대신 정강이를 조물조물해준다. 그러면서 눈은 대각선 1번 좌석의 지희를 향한다. 턱을 괴고 바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섯 살 지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뒷모습이 짠하다. 매사 자신보다 보채는 언니 옆에서 의젓하게 있느라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철이 드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든다.


곤히 잠든 첫째의 다리를 살며시 들어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후 지희 옆으로 간다. 티를 안 냈을 뿐, 지희도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었을 테다. 내가 옆에 가니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뻗고 머리를 내 무릎에 댄다. 나는 지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부드럽고 곧게 뻗은 머리.

안보는 사이 세희는 오른쪽 눈썹 위에 점이 났고, 손등에 있던 제법 커다랬던 몽고반점이 없어졌다. 지희의 머리칼이 이렇게 부드러운지도 이렇게 손으로 쓸어 넘겨보기 전엔 잘 몰랐다.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엄마 없이, 두 아이는 크고 있는 중이었다.


겨우 이런 내가 되려고 두 아이에게 엄마 노릇을 못하고 있는 걸까 싶어 또 눈물이 났다. 좀 더 굳세게 살아야 하는데.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내가 힘들면 힘든 대로,

잘 지내면

아이들 없이 잘 지내는 죄책감으로

난 언제나 힘들 것 같다.


자기 전에 아이들이

“아빠가 화 내. 그치 지희야?”

“응. 아빠 화 내.”

라고 입을 모아 말하면

거기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채

내가 없는 아이들의 생활이 걱정만 된다.




“엄마, 우리 소원 이루어진 거야?”

“응, 소원? 소원이 뭔데?”

“외갓집 가는 거.”

응, 세희야, 지희야. 오늘내일 너희 소원 이루어진 거야. 엄마가 많이 안아주고 예뻐해 줄게.

늘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친정에 와서 목욕을 시켜주며 괜히 한 번 물어본다.

“누가 이렇게 이뻐? 누구 딸이야?”

“엄마 딸.”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는 딸 지희다. 나는 빙그레 웃는다.

흰 피부의 세희는 목욕하며 보니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으로 처음 확인한 그날처럼 진분홍색 입술이 특히 눈에 띈다. 나는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 힘들어도 더 잘 살아볼게. 너희 봐서.

우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