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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16. 2022

선생님이 오해해서 미안해.

 일주일 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학교로 다시 출근을 하는 첫날, 우연스럽게도 학부모 총회가 열렸다.

 총회 하루 전날, 그러니까 어제 집에 있다 학부모의

 선생님~~ 내일 총회이라는데 다른 공지가 없어서...

 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다음날이 온라인 학부모 총회 날이라는 걸 알았다.


 어제 하루 나를 축 쳐지게 바닥으로 당겼던 꾸물꾸물한 감정은 오늘 아침 부산을 떨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일 년에 단 하루, 학부모님과 공식적으로 얼굴을 맞대는 날이니 만큼 머리를 에어랩으로 말고 화장도 신경 써본다.

 옷은 뭘 입을까 고민하다 부드러워 보이는 파스텔 핑크색 샤 치마와 카디건을 골랐다. 둘 다 집에 갇혀 지내느라 오늘이 첫 개시다.


 오랜만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이들 나눠줄 마스크와 생활본, 걷어야 할 가정통신문으로 어지러웠다.

 지난주 목, 금 아픈 목으로 줌에서 만난 아이들 얼굴을 실제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아이들도 눈이 동그래져 인사하는 모습이 귀엽다. 그사이 확진된 학생이 세 명 늘어나 겨우 열여섯 명만 출석을 했다.


 미뤄둔 진단평가를 보고, 재료가 와있던 과학 실험을 모둠별로 해본다. 빈 플라스틱 병과 유리알이 든 플라스틱 병을 동시에 굴려 어느 것이 먼저 굴러내려오는 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교실 안이 크고 작은 탄성으로 가득 찬다. 뭐든 이렇게 실제로 해보는 게 좋을 때다. 여럿이 같이하면 더 즐겁고.


 첫 날 전학생과 싸운 우리반 ADHD 학생은 진단평가 중 쓰기 과목을 아예 집에 가져가서 풀어오겠다고 했다. 앞 과목이었던 읽기를 거의 두 시간에 걸쳐 풀었으니 다음 과목을 풀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수학은 다 풀어서 내었다.

 미술시간에 나비를 꽃으로 꾸미는 간단한 컬러링을 남은 시간 했는데, 우리 유명이는 손도 대지 않고 비오의 리무진을 틀어달라며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겠다 했다. 혹시 기분이 좋아지면 과제를 할까 싶어 노래를 시켜주고 즐겁게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도 들어가서 할 일을 안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번 말해 보았지만 듣지 않았다.


 5교시 체육 시간에는 간단히 규칙을 설명한 뒤에 처음으로 피구를 했다.

 시간이 여유 있지 않아 한 게임만 한 후 급식실로 내려가려는 찰나, 유명이가

 "오늘은 급식 먹기 싫어요. 그냥 집에 가도 돼요?"

 라고 물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는 굳이 감염 위험이 높은 급식실에 가서 점심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 해도 엄마가 괜찮다고 하실까?"

 "네."

 "그래, 내일 보자."

 하며 나는 교실 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유명이를 교실로 보낸 후 나머지 학생들과 손을 씻으며 번뜩 '아차!'싶었다. 핸드폰을 책상 서랍에 넣어놓은 채 잠그지 않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유명이의 ADHD가 어떤 쪽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혼자 교실에 있다 보면 이것저것 충분히 뒤져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유명이가 내가 핸드폰을 거기 넣는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급식실에서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서도 '혹시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만에 하나 정말 핸드폰이나 다른 물건이 없어진다면? 그리고 유명이가 했다는 걸 정확히 밝히지 못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하얘져왔다.

 밥을 다 먹을 즈음에는

 '없으면 없는 대로. 일단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가보자.'

 라고 나를 달랬다. 걱정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강력한 의심을 하는 자체가 유명이에게 미안했다.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을 모두 하교시킨 후 떨리는 마음으로 서랍을 열어보았다.


 나의 오래된 아이폰은 알리에서 온 주황색 하트가 그려진 케이스를 입은 채 고이 그 자리에 모셔져 있었다. 잠시나마 유명이를 의심한 데 대해 미안하면서도, 앞으로는 이런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 않게 물건 간수를 평소에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학부모 총회를 코앞에 두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늦게 들어오실 수도 있다는 내용의 통화를 한창 하고 있는데 집에  줄로만 알았던 유명이가 친구와 같이 우리 반에 왔다. 같이  친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유명이와 친해 보이는  아이는 누구고 어떤 아이일까, 궁금해졌다. 아마도 나보다 유명이에 대해 훨씬 많이 고 있을 것 같아서.

 "책을 안 가져가서요."

 어머니가 그래도 준비물은 꼬박꼬박 챙기시니 내일 줌 수업에 필요한 책을 다시 가지러 온 모양이었다.

 나는 통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아는 그 미안한 마음을 더해,

 "oo아, 잘 가!"

 라고 들리게 외쳤다.



 오늘 온라인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학부모님은 총 아홉 명. 3학년 치고는 그다지 높은 참석률이 아니다.

 학생의 얼굴을 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그간 아이를 키우며 겪었을 그 숱한 수고가 절로 전달이 된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운다"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냥 "두 아이가 있다"라고 해야 맞는 말이었겠다. 어쨌든 어머니의 수고를 저도 익히 알고 있다고, 사랑으로 이끌어가려는 마음을 전했다.


 유명이의 어머니도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다.

 앞으로 나는 아마도 곧 다시 유명이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따끔하게 나무라기 전에 오늘 이 미안한 마음을 한 번만 앞서 상기하고 싶다.

 완벽하진 못해도 따뜻한

 특유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선생님이고 싶다.

 그러려면 때로 단호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 적정선을 찾는 게 올해 나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유명아, 오늘 선생님이 미안했다. 오해해서 미안해.

 

 그런데... 진단평가 보고 남은 셈하기 시험지는 어디로 갔지? 내가 못찾는 건가...


유명이가 개학 첫 날 전학생과 싸운 이야기는 여기에 있어요.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safaier7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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