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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y 02. 2022

5월의 어떤 생일 선물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고..."

 라고 동학년 선생님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지난 일 얘기를 또 꺼내 든 불만쟁이 선생님께 나도 참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서 뭐가 불만이세요? 이것도 처리해 드리고 저것도 처리해드렸잖아요."

 그렇게 주말을 앞둔 금요일, 우리는 서로 얼굴이 붉어졌다. 내 딴에는 한다고 하는데 그분 마음에 처음부터 들지 않는다고 해서 욕을 먹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토요일 아침,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할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새벽에 장문의 글을 썼다. 그러나 이걸 과연 토요일 아침 학년 선생님 단톡방에 투척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는 약간 고민이 되었다. 경어 사용과 지나간 일을 재차 이야기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당부 등이 그 내용이었다. 어차피 이틀만 더 나오면 연휴에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꼭 필요하면 연휴 시작 날에 말을 하던지 메시지를 보내던지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요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다. 아직도 해맑기만 한 쌍둥이 자매는

 "느네 엄마 생일이다."

 라는 외할머니 말씀을 들어도 눈앞에 켜진 초를 끄기에만 바빴다.


 월요일 아침,  조용히 그 불만 선생님을 오후에 불러 조곤조곤 부탁의 말씀을 드릴까 했는데 학교 후문에 주차를 하고 교실을 올라가려다 체육부장님이 보여 걸음을 멈추었다.

 "부장님, 고맙습니다."

 금요일에 부탁드린 달리기 트랙과 공 굴리기 출발선 등을 그리느라 일찍 출근하신 게 분명해 보였다.

 "아, 지금 줄은 ooo 선생님과 xxx 선생님께서 같이 그리고 계세요."

 "네?"

 운동장으로 나가보니, 두 최연장자 분께서 일찍 오셔서 필요한 줄을 긋고 계셨다.

 "아니 선생님, 이건 이렇게 그어야 한다니까요."

 "이렇게 해도 상관없는데요? 그럼 선생님이 그으세요."

 여기서도 64년생 남자 선생님과 자기주장이 강한 불만 선생님 사이에 작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었다.

 나는 금요일 회의 때 협의한 내용을 떠올렸다.

 "선생님, 그거 이렇게 하기로 했었어요. 저쪽만 마저 그리면 될 것 같은데, 제가 그을게요."

 그렇게 그 대화는 정리가 되었다. 실제 체육대회 날도 아니고 연습일 뿐인데 아침 일찍부터 나오신 두 분이 너무 감사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참, 얼마나 대충대충인가.

 "선생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몇 시에 나오셨어요?"

 고마운 마음에 일부러 크게 호들갑을 떨어본다.

 "7시 50분."

 "아이, 선생님. 진짜 일찍 나오셨네요."

 나는 나보다 한참 조그만 선생님 어깨를 나도 모르게  끌어안았다. 나름의 감정 표현이었다. 선생님의 얼굴에  얹어져 있는  화장이 눈과  사이에 뭉쳐져 있는 것도 보였다. 아마 아침에 부랴부랴 나오느라 화장이 친 것이리라.

 "선생님, 여기 펄이 뭉쳤어요."

 어떻게 하면 이분께 감정을 상하지 않고 필요한 사항을 잘 전달할까, 2반 부장님께 미리 말씀드리고 같이 있어달라고 도움을 구할까 고민하던 마음이 일거에 풀렸다. 나는 모든 일을 대충 하려는 부장이었고, 사실상 일이 돌아가는 걸 하나하나 자세히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불만 선생님과 옆반 남자 선생님이 실무를 다 하신 거나 다름이 없었다.

 "저기 지지대도 내가 다 해놨어."

 화단에 심어놓은 우리 학년 방울토마토 말씀이셨다. 어쩌면 이 분도 주말 동안 나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셨던 걸까.



 1학년, 2학년 때 운동회라고는 해보지 못했던 아이들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운동장을 가르며 달리기가 시작되자 아이들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늘은 일부러 돌아오는 선을 짧게 그려 연습한 공 굴리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여서 야외 운동을 한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 아니던가. 신나서 목청껏 응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졌다.


 오늘부터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한다. 나는 점심을 먹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부터 거리두기 해제된 거 알지? 그래서 선생님이 부탁이 있는데."

 "네, 뭔데요?"

 나는 오늘이 생일이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선생님 좀 한 번씩 안아주고 가."

 막상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싫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거부감 없이 "네"라고 한다. 2년 전 영어 교과에서 다시 담임을 한 뒤로 처음 안아보는 반 아이들, 나는 한껏 키를 낮췄다.



 생일 축하는 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일종의 환영 인사와 같다.

 우리 반 꼬마들을 힘껏 안아주며 내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를 새삼 느낀다.

 나의 텅 빈 가슴을 다른 이의 축하로 조금이나마 채웠으므로 나는 다시 일 년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외로워도 슬퍼도 따스히 살아가는 증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외로움과 슬픔을 헤아려주어야 한다.

 내게 함부로 대하는 이에게조차 마음을 내어 안아줄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치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네요.

 흔들리며 나아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의 봄에 따뜻한 햇살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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