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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03. 2022

마흔 살 선생님

 2월 신학기 준비기간, 학년이 발표되고 처음 같은 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였을 때

 부장으로 처음 다른 선생님들 앞에 서는 일 자체로 무척 떨렸다.

 그날 무슨 옷을 입고 가야 적합할까조차 신경 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 부장을 맡은 내가 그랬던 만큼, 분반된 여러 학생 명단 중에서 자기 반을 뽑는 일이 아마 모든 선생님께 가장 떨리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작년에는 반을 뽑으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새 학교에서 첫해였기 때문에 학교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이유도 있었고, 내 개인적인 송사에 정신이 팔려 다른 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둘 겨를도 별로 없었다.

 작년에 반을 뽑으며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속으로 '그 애만 제발...'이라고 생각했다가 딱 그 애가 그 반이 되었다.

 정말 유명한 문제아였는지 받자마자 그 선생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알고 보니 작년에 그 전 학년을 맡아 그 아이의 유명세를 익히 아시고 계셨다.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맡아 1년 동안 큰 고생하시는 걸 옆에서 봤던 만큼

 이번에는 나도

 '너무 힘든 학생은 피해가게 해주세요.'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첫 번째 만져지는 종이 대신 두 번째 종이를 뽑았다.

 그래서였을까?

 제법 힘들다고 하는 남학생 하나가 떡하니 우리 반에 배정이 되었다.


 우리 학년 선생님  절반은 작년 2학년에서 올라오신 터라 올해 3학년 아이들 대해  아신다.

 내가  학생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게  것도 이전 담임 선생님이 바로 옆반 선생님이기도 해서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해주신 덕분인지 개학 첫날부터 이벤트가 있었다.

 전학 온 남학생과 그 유명 학생이 한 번밖에 없는 쉬는 시간에 서로 머리를 때리는 싸움이 있었다.


 낯선 곳에 전학을 왔는데도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반말을 하는  남학생도 처음부터 좀 이상해 보이긴 했다.

 하교 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이야기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전에 치료 경험이 있다고 했다.

 ADHD를 앓는 두 남학생이 서로를 자극하며 싸움이 붙은 일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문제는 기존의 유명 학생이 전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 전에 전화기를 꺼내 117로 신고 전화를 하려 했다는 점이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다고 나중에 듣긴 했으나, 눈앞에서 실제 전화를 거는 아이모습은 충격이었다.




 작년에 2학년 부장을 하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셨다는 나이 지긋한 여자 선생님은 얼굴이 활짝 피셨다. 학교에 추가로 신규 교사가 배정이 되어 업무까지 거기로 미루시고, 친목회장만 맡으시기로 했다 하신다. 아이들과도 첫날 케미가 괜찮으셨는지 좋은 얘기뿐이셨다.

 

 나는 평소처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소란했다. 1 동안 학급을  이끌어갈  있을까 첫날부터 기가  꺾이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 어땠냐고 가기 전에 물어봐도 시무룩한 대답이 많았다.


 처음 내 소개를 하면서는 칠판에 숫자 세 개를 써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맞춰보게 해 보았다.

 17이라는 숫자를 보고 한 여학생은

 "이혼을 열일곱 번 했어요."

 하는데 차마 거기에 웃질 못했다.

 이혼은 어느새 아이들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작년에도 아이들이 한 번씩 이혼 얘기를 꺼낼 때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가슴이 철렁했었다. 한 번은 사회에서 공공기관을 배우는데

 "공공기관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에

 "법원이 사라지면 이혼을 못해요."

 라고 우리 반 똑똑이가 대답을 해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선생님을 한 지 17년째가 되는 해에요."

 그렇게 숫자 17에 담긴 의미를 알려주었다.

 중간에 휴직한 기간, 파견 간 기간도 있지만 시작한 년수로 치면 그랬다.

 마흔 살, 경력 15년.

 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든 해나갈  있을  같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짝사랑이라고 해도,

 지난 시간의 합만큼 괜찮은 선생님으로  볼게.



 정신없는 하루가 가고

 그 전학생과, 역시 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어머니와 그날의 싸움에 대해 불편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작년 이쁜이들이 예전 약속대로 나를 보려고 함께 복도 밖에 눈을 빼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사실 나를 보러 온다고 해서 살갑게 나눌 말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개학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여럿이서 지켜주어서 힘이 많이 됐다.

 "선생님이 지금 전학생 학부모님과 상담 중이어서, 다음에 또 오렴."

 하고 싱긋 웃어주었다.

 “오늘  선생님은 어땠니?”

 하고 묻고 싶었는데, 물을 시간이 없었다.


 그 두 학생은 감당 못할 시련일까, 아니면 감당할 수 있어서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일까.

  희생으로 다른 선생님들은 편하게 지낸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갖지 않으련다. 어떻게든 1 동안 함께  지낼 방법을 찾아내어 나름의 평화를 짓고 살고 싶다.

  평화로 가는 길이 내가 생각하듯 따뜻한 챙김으로 되면 좋겠는데 ADHD 앓는 학생은 때로 그게 통하지 않는 다른 생물체 같기도  속단할 수는 없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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