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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11. 2022

안녕, 4학년 1반

 2021학년도가 오늘 끝났다. 종업식을 하고, 아이들에게 새로 배정된 반이 적힌 통지표를 나눠줬다.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이라도 데리고 올라가고 싶어 5학년 담임을 지원했지만

 학교 사정상 3학년 담임이 될 것 같다.

 많이 아쉽다.


 "선생님, 그러면 내년에 저희 6학년 올라갈 때 맡아주시면 안 돼요?"

 내가 아쉬워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은 나와 더 보지 못하는 걸 섭섭해했다.

 

마음 따뜻해지는 편지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 반이 없었다면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버텼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하루 출근해서 할 일이 있어서,

 그리고 그게 우리 반 아이들이라서

 내가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일깨워주어서

 아직 내가 피가 돌고 살이 있어 숨을 쉬는 인간이구나를 순간순간 현실로 돌아와 알게 해 주어서

 ... 너희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왔을지 잘 모르겠어.

 오히려 선생님이 너희에게 고맙구나.

 크게 해 준 것 없이 무럭무럭 커 가는 너희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이렇게 조금 더 말하려다가 개구쟁이 남자애들 덕에 금세 분위기가 정신 없어져

 다행히 울지 않고 마쳤다.

 



 회자정리.

 인생은 원하지 않는 헤어짐과 또 새로운 만남으로 가득하다는 걸

 어쩌면 아주 어린 초등학생들도 매년 이 시기에 겪게 되는 것 같다.

 

 스물다섯 살, 앳된 나이에 첫 담임을 하며

 어떻게 알아냈는지 집주소로 배달된 까사온 구스다운 이불을 이제 버리려 한다.

 십오 년... 품질이 너무 좋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시절도, 좋았던 그 이불도 보내주며

 새로운 이불을 사고

 

 이제 다시 새로 만날 아이들을 기다려야겠지.


 옆반 전근 가시는 부장님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인수인계에 관해 여쭤본다.

 “제가 마지막까지 이렇게 모르는 걸 여쭤보네요.”

 멋적었다.

 아마 어리버리한 내가 마음에  들기도, 속으로 ‘저 선생님은  저래?’라고도 자주 생각하셨을  같다. 그래도  참견 없이, 그런 나와 우리 반을 견뎌준 것에 감사하다.


 학년부장님께도 찾아가 1년이 너무 좋았다며 감사를 드렸다.

 같은 학년 선생님이 함께 보낸 그 해가 너무 좋았다고 하는 건 어쩌면 최고의 칭찬 아닌가?

 부장님 표정이 활짝 피어난다.

 사실

 "사생활에 대해 묻지 않아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라고 전하고 싶지만

 마지막까지 끝내 말로 전할 수가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건 올해 나도 부장으로 일하며

 우리 부장님의 모습을 닮으려 애쓰는 것뿐.

 그래서 나와 함께 일하게 될 여러 선생님께 내년 이맘 때

 '우리 부장님이 처음 부장으로 일해서 서투른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시고, 잘 챙겨주시려고 하셨다.'

 정도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보내고,

 편지도 받고

 마스크를 낀 채로 셀카도 함께 찍고

 아이들의 게시물이 다 떼어진 텅 빈 교실에

 미처 지우지 못한 내 흔적을 정리하다

 3차 백신을 맞으러 나왔다.


원래 백신 맞고 술 마시면 안되지만...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점심에 페리에 주에 샴페인을 한 잔 곁들인다.

 영주가 선물해 준 벨에포크는 아직 시기상조지만,

 페리에주에 정도는 이런 날에 딸 수 있다.

 1년 동안, 수고했구나.

 스스로 많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일하길.

 그러면 언제나 사랑받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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